유달준 유안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유달준 유안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사법시험의 폐지를 정한 변호사시험법의 위헌여부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위헌을 주장하는 측에선 직업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 평등권 침해를 주장하였지만, 헌법재판소에선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사법시험을 존치시키기로 한다는 새로운 내용의 입법이 되지 않는 한 50년 넘게 대한민국의 법조인을 양성하는 시스템이었던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사법연수원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법조인양성기관에서 법원, 검찰의 실무를 두루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은 법조인으로서 기본적 소양을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검찰실무 기간에는 검사시보라는 직함으로 직접 사건을 조사하여 처리하기도 하고, 관할지역내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있는 것이 보고되면 담당검사의 변사체 검시에 참여하기도 한다. 변사자란 자연사가 아닌 부자연사로서 범죄로 인한 사망이 아닌지 의심이 있는 사체를 말한다. 변사사건의 경우 검시를 하거나, 부검을 통해 사인을 규명한 후 사체를 유족에게 인도하도록 하는데, 이처럼 검시나 부검을 하는 이유는 ‘사인’을 규명하기 위함이다. 죽은 사람이  혹시 범죄로 죽음을 당한 것은 아닌지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인을 규명할 필요가 없을 경우에는 어떨까. 당연히 부검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한명의 사망, 그리고 그에 대한 사망진단서로 인하여 의료계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작년 11월에 있었던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농민은 뇌출혈에 따른 의식불명상태로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달 사망한 바 있는데, 담당 주치의가 사망진단서에 사망원인을 ‘병사, 심폐정지’라고 적으면서 사망원인을 부검을 통해 밝힐 필요가 있는지 논쟁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그 때문인지 법원에서는 유래가 없는 조건부 부검영장을 발부하였다. 전혀 논쟁이 되지 않을만한, 되지 말았어야 할 고인의 사망이 결국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우리 법원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연관성 판단에 있어 ‘상당인과관계’라는 기준을 갖고 판단한다. 집에 침입한 도둑을 때려 뇌사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 ‘사망진단서의 직접 사인이 폐렴이라고 하더라도 폐렴이 피고인이 가한 외상과 피해자 사망의 인과관계를 단절할만한 독립적 사망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 법원의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그렇지만 이 사건에 있어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는 주치의의 판단은 본인을 제외한 의사, 그리고 의대생들마저도 납득을 못하는 모양새다. 자타공인 우리나라 최고의 의료기관이라는 명성에 흠집까지 내면서 저런 무리수를 두는 건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는다.

고도로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현대 사회에선 소송과정에서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각종 감정신청에 있어서 감정인이나 전문심리위원들을 두는 것은 법관이 알지 못하는 각종 분야에 있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함인데, 전문가들이 직업적 양심에 따라 올바른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는 신뢰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사법 분야는 이미 불신이 넘쳐나고 있다. 법과 원칙이 준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중립적인 분야에서 전문가 집단이 직업적 양심을 저버린다면 사회의 기본적인 신뢰가 깨어지게 되어 불신에 불신이 꼬리를 무는 불행한 사태를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직 늦진 않았다. 선배님들에게 의사의 길을 묻는다던 의대생들의 패기에서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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