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안용주 선문대 교수] '여가'는 남을 여(餘), 겨를 가(暇)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겨를'이란 다른 말에 붙어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의존명사에 해당하는 말로,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 따위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나타내는 말이다. "숨 돌릴 겨를도 없다"는 쓰임이다. 학문적으로는 '개인이 가정, 노동 및 기타 사회적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휴식, 기분전환, 자기계발 및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활동하는 시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과 산업발달이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인 의식변화를 조사한 논문에서는 "개혁개방에 의해 절대적 가구 경제수준은 나아진 것으로 보이나 상대적인 불평등 심화와 기대수준 상승으로 인한 불만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한다. 경제성장과 산업화는 객관적 지표로서 물질적 풍요와 생활안정 등의 만족도를 키운 것은 사실이지만, 나날이 증대하고 있는 여가시간, 지적만족, 사랑과 존경에의 욕구 등 주관적 지표에서는 비례하지 않는다.

 한국민의 여가향유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OECD에서 발표한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이다. 한국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국가 평균 1,770시간보다 무려 343시간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1일 8시간 한 달 평균 22일을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약 2달을 더 많이 일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야근 빈도는 거의 매일 27.4%, 일주일에 3~4회 24.0%, 거의 하지 않는다 18.3%로 조사되었다.

 <한국인의 소비와 여가생활>은 한국의 경제적인 수준은 상당히 높은 단계에 올랐지만 문화적 수준이 그것에 따라가지 못함을 입시위주의 교육정책, 취직, 격무, 집 장만, 차 사기 등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갖추기에 급급해서 여가나 취미,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이 살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 5일제가 정착한 지금도 한국인의 여가활용형태는 휴식, TV시청, 친구 만나기 등의 휴식형과 관계형에 머물러 있고 생산적 여가활동에 대한 의식수준이 아직도 정체현상을 빚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한 '국민 여가활성화 기본법'이 2015년 11월 시행되었지만 이를 제대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외국과 같은 여가정책을 통합, 조정, 기획할 수 있는 관련조직이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경륜사업으로 형성된 보조금을 활용한 것처럼 경마, 경륜, 복권 등 사행산업의 수익 일부를 여가산업의 재원으로 활용하고, 국민 여가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과 정보, 홍보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대도시와 중소도시에 비해 열악한 군(郡)지역의 생활권 여가환경을 조속하게 확충해 나가야 한다. 소득계층 상위 10%의 교양오락비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하위 10%의 교양오락비는 계속 하향 추세임을 직시하고, 저소득층의 아동, 청소년, 노령층의 여가양극화현상을 해결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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