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권 23곳 중 고작 5곳만 설치
관람석 5천석 이상에만 의무화
용정공원서 축구하던 60대 숨져
[충청일보 신정훈기자] 매월 이용객이 1만명이 넘는 체육시설에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자동제세동기가 설치돼 있지 않은 탓에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귀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를 막지 못했다.
지난 8일 오후 5시29분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정축구공원에서 축구를 하던 동호회원 A씨(62)가 경련을 일으키며 갑자기 쓰러졌다. 함께 축구를 하던 동호인들은 즉시 119에 신고한 뒤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일부는 자동제세동기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자동제세동기를 찾을 수는 없었다. A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은 "약하게나마 호흡과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자동제세동기만 있었어도 살릴 수 있지 않았겠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심정지 환자에게는 4분이 골든타임이다.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 등의 즉각적인 조치가 있을 경우 생존확률은 50% 이상이지만 4분이 지나면 생존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A씨가 축구를 하다가 숨진 용정축구공원의 시설관리주체인 청주시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는 체육시설은 청주실내수영장, 김수녕양궁장, 청주인라인롤러스케이트 장 등 모두 11곳이다. 이 중 자동제세동기가 설치된 곳은 김수녕양궁장과 청주실내수영장, 국민생활관 등 고작 3곳이다.
공단이 관리하는 시설 3곳을 포함해 청주에 위치한 체육시설 23개 가운데 자동제세동기가 설치된 곳은 청주종합경기장, 청주야구장 등 5곳이 전부다.
자동제세동기 설치율이 겨우 21%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청주권 체육시설의 자동제세동기 설치율이 낮은 것은 관련법에 자동제세동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체육시설 규모가 턱없이 크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관람석 수가 5000석 이상인 운동장 및 종합운동장에만 자동제세동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람석이 692석에 불과한 용정축구공원에는 자동제세동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운동 중 갑작스럽게 쓰러질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는 체육시설에 관람석 규모에 따라 자동제세동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한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시민들의 체육여가활동이 급증하는 추세를 고려한다면 관람석 규모와 상관없이 다중이 이용하는 체육시설에도 자동제세동기 설치 의무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충북도소방본부의 한 구급대원은 "심정지 환자에게 4분은 골든타임이다.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적절한 조치만 해도 생존율은 매우 높아진다"며 "자동제세동기가 확실한 생명 연장 끈의 역할을 하지만 아직 많은 곳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한 축구동호인은 "법적 의무를 떠나 많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체육시설의 경우 대관료를 내는 만큼 수익금을 이용해서라도 이용객의 안전을 위해 자동제세동기를 비치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청주시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이런 문제점이 있는지 몰라서 조치를 못한 부분도 있다"며 "이번과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