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나서부터 필자도 차도와 함께 하루를 살게 되었다. 문명의 발달 덕분에 빠르게 혹은, 편하게 살려고 하는 욕구 때문에 걷기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주차한 곳까지 몇 걸음 걸어가서 차가 다니는 길을 따라 운전을 하여 출근을 하고 다시 세워 놓은 차로 퇴근을 했다. 일을 보러 다닐 때도 목적지에 도착하여 일을 마치면 부리나케 다시 차로 길을 달렸다. 그러니 운전면허증 덕분에 차도와 함께 하는 새 삶을 얻은 것이다.

 차도에서 살던 삶이 다시 인도로 바뀌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 날씨를 나 몰라라 하고 차 안에서 보냈던 지난 세월에 대해 미안한 마음으로 줄기차게 인도를 걷는다. 차는 집 주차장에 세워둔 채 출퇴근할 때도 걷고 집 근처 무심천 언저리를 걷고 영운천을 따라 만들어진 수변관찰로도 걷는다. 한여름 내내 38도를 넘나드는 동남아에서 매일 10Km 이상을 고통스럽게 걸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나라의 가을은 보약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주는 좋은 보약을 외면할 것인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에 우산을 펴고 집을 나서는데 공연히 객기를 부리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비와 바람이 주는 냉기의 위세 덕분에 제대로 걸을 수 있으려나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걷다 보니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걷기 문화는 제주의 올레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올레는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며 해안 지역을 따라 길과 길을 연결하여 관광객을 모으며 제주 관광사업에 한몫을 했다고 한다. 전국의 지방자치 단체들도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길을 만들기 시작했고 현재 우리나라에는 어느 지방을 가도 풍광이 좋은 곳에 둘레길이라는 길이 있다.

 새로 닦은 길도 있지만, 필자가 가봤던 대부분 길은 이 마을과 저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고 굽잇길이다. 또한, 삶을 위해 미역이나 고동 등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작업을 뜻하는 바래길과 해안을 따라 걷는 바닷길이며 옛사람이 걷던 마을길이다. 그 모두가 삶의 길이다. 그런데 인도를 걷다 보면 걸음의 맥이 끊어져 은근히 기운이 빠진다. 사방 널려있는 신호등 앞에서 일단 멈추어 기다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도까지 점거한 차량을 피해 다녀야 하며 마땅하게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오고 가는 차를 피해 걸어야 하니 차가 달려올 때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하다.

 교통질서를 위해 우측통행을 생활화하자는 캠페인을 벌인다는 다른 지역의 소식을 보고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시민의식 부재가 안타까웠다. 좌측통행은 일본 식민지의 잔재이고 우측통행이 보행인에게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하다고 통행법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도 바뀐 통행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다. 정부의 '보행문화 개선방안'은 7년이 되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행자를 보호하고 기초질서를 이룩하자는 의도인데 국민이라면 나라가 정한 법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내 마음대로 내가 갈 길도 못 가냐고 항의를 하는 이기심이 끝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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