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전 청주고 교장·칼럼니스트

[김재영 전 청주고 교장·칼럼니스트] 교장으로 승진 후에 고향에는 첫 근무인 음성고에 발령을 받고 처음 만난 고향의 어르신께서 "자네, 고향에 왔다며"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자 가슴이 뭉클했는데 1년 후에 청주시 청운중에 부임해서였다. 아침부터 빗방울을 뿌리는 날씨였다. 교문에 들어서자 우산도 쓰지 않고 등교 학생들을 두 분 선생님이 지도하고 계신다. 너무도 고마워서 교장실 창문을 연 채 한참을 바라보았다.

 오후가 되자 날씨가 쾌청해졌다. 오늘은 직원체육일, 직원들이 모두 배구장에 나와 경기에 열중하고 응원하는 선생님들이 분위기를 돋우었다. 여선생님이 집에서 빈대떡 반죽을 해오셨고, 옆에서는 동태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소주 한잔 나누며 바쁜 하루 생활을 정리하며 다정하게 담소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한쪽에서는 남자선생님이 여선생님들과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理不如人和)"고 인화(人和)가 조직을 이끌어 가는 요체임을 늘 상 강조했던 말이 무색해졌다. 이튿날 아침에 음식장만을 맡으셨던 선생님들과 마차(麻茶)를 한잔 나누며 교장실에서 담소할 시간을 가졌다. 바쁜 생활 속에 나누지 못했던 선생님들의 신상문제, 학급을 운영하며 발생한 어려운 문제에 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기회여서 더욱 좋았다.

 교감이 된 이후에 직원체육은 매주 수요일에 꼭 실시해왔다. 수요일에 못할 경우에는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실시하자 직원체육 보강(補講)이란 말이 생겼다. 생활에는 단조로움보다는 리듬의 변화가 필요하다. 선생님들에게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의 피로는 직원체육으로 풀고,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피로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풀자고 했다.

 세월의 흐름을 부싯돌불빛(石火光中) 같다고 한 채근담의 말이 생각난다. 벌써 15년 전의 추억이 되었으니… 인문고등학교인 청주고에 부임하고 보니 매주에 시간내기가 어려워 직원체육을 자주 못하니 아쉬움이 컸다. 퇴직 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수요일에는 직원체육을 함께하고 평일에는 수업이 없는 분들을 교장실에 모시고 함께 차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던 '한솥밥을 먹는 식구'라는 생각으로 생활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아직도 교육현장에서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본무(本務)보다 잡무에 시달리고 계신다. 선생님들이 시간여유가 있어야 상담도 하시고 학생들에게 더 사랑을 쏟으실 텐데, 함께 지냈던 선생님들의 건강을 빌며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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