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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초 아들이 드리는 약속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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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4  16: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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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932년 도쿄 태생, 향년 85세. 조용하고도 장렬한 죽음이었다.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1930년대는 말 그대로 격동의 시대였다. 자유주의가 풍미했던 다이쇼(大正)가 지나고 쇼와(昭和)가 되자 승승장구하던 일본 경제와 민생에 어두운 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미국발 대공황이 국민생활을 무겁게 짓눌렀고 치안유지법을 휘둘러 공안이 반항세력에 대한 탄압을 일삼았다. 급속하게 군부 강경파가 권력을 장악해 나갔고 거물급 정치인들이 연이어 암살을 당했다. 1931년에 이르러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일제의 아시아 침략이 그 절정에 달했다.

 근대식 우정사업(郵政事業)을 도입하려는 중국정부의 요청을 받고 현지 지도 관료로 베이징에 부임한 할아버지를 따라 아버지는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것이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해였으니 그곳 객지생활이 편안할 리가 만무했다. 4년 뒤 1945년 8월에는 일본이 패망하게 되었고 목숨 하나만을 겨우 건지고 할머니가 삼남매를 데리고 고향 나가노로 돌아왔다. 할아버지하고는 종전을 15일 남겨놓고 생이별한 상태였다.

 졸지에 소년가장이 된 아버지는 악물고 살아왔다. 친척들도 선뜻 도와주지 못할 정도로 나라 전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린 나이에 총명하기로 이름난 학생이었지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고 열심히 일해 한두 푼씩 모은 돈으로 누나를 결혼시키고 동생을 대학에 보냈다. 인내와 희생의 연속이었던 아버지의 삶, 아버지가 늘 과묵했던 건 이러한 성장과정의 영향이었으리라.

 우리 3형제를 낳고 키우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꼭 필요한 말만 하셨던 아버지, 오랫동안 앓은 위병이 도져 한 사발 가득 피를 토하면서도 자식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던 아버지.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가 솔직히 무섭고 싫었을 때도 있었지만 크면서 경직된 그 모습 뒤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자식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나는 조금씩 깨닫게 됐다.

 내가 한국여자랑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도, 한국에서 살겠다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반대를 안 하고 내 말을 들어주고 응원해 주셨다. 1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임종을 지키지 못해 이미 차갑게 누워 계신 어머니 앞에 허겁지겁 나타난 나를 나무라지도 않으시고 "수고했다"고 한 마디만 하신 아버지. 그러면서 며느리와 손자들에겐 한없이 자상한 아버지였다.

 20년 넘게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다 작년에 폐렴을 않고 나서 급속히 건강이 악화됐다.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버지는 연명치료를 일체 거부하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셨다. 이미 1년 전에 직접 상조회사를 찾아가 본인의 장례식 계약서에 서명하고 오셨다. 음식을 못 먹어서 병세가 짙어지고 마지막엔 링거 바늘을 꽂을 자리도 없어졌지만 뼈만 남은 상태로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아버지, 당신의 아들이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한 평생 사랑하고 베풀며 사셨던 당신 닮은 자식이 되게 불초 이 아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마음 편히 쉬세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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