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제안(24일)과 비선 실세로 지목받고 있는 최순실 씨의 대통령 연설문 사전 열람 파문, 이어 나온 대통령의 대국민사과(25일)로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빠졌다. 차기 대권 주자를 비롯해 정치권이 대통령이 꺼내 든 '깜짝 카드'를 놓고 의도 파악과 그에 따른 정치적 셈법을 하느라 바쁘게 돌아가는 판에 터져 나온 최 씨의 '사전 검열'사건으로 청와대는 물론 여당이 충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야당 역시 이 메가톤급 사건을 국기 문란, 국정 농단으로 규정하며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최 씨의 '사전 검열'사건으로 개헌 정국은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개헌에 대한 진정성이 계속 의심을 받고 있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최 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 이른바 '우·순 게이트'로 지지율이 추락하며 국정 주도권을 빼앗긴 대통령과 여당의 정략적인 국면 전환용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50년, 100년 앞을 대비하고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호소가 먹혀들지 않고 있다.

나아가 국민이 원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헌 요구와 거리가 멀다는 주장도 가세하고 있다. 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지금 대통령이 하려는 개헌은 정치인을 위한, 정치인이 원하는 것이지 국민을 안중에 둔 논의가 아니다. 지금은 개헌을 꺼낼 시점이 아니다"고 혹평한 것으로 뉴시스는 보도했다.

이러니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헌법 체제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로 개헌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주도해선 곤란하게 됐다. 현행 헌법에서 개헌 발의는 대통령과 국회가 할 수 있고, 개헌안은 국민투표로 결정된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난데없이 불쑥 제기됐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개헌 불가'에서 급선회한 것에 의심의 눈초리가 꽂히는 상황이다.

이를 정치 공세로 치부하기엔 박 대통령 자신이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고,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올 초 신년 기자회견과 4월의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지금 개헌을 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며 거듭 반대한 것을 돌이켜볼 때 군색해진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개헌은 국회를 중심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국회가 주도권을 잡는다고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 제1야당 대표가 지금은 '게이트'진상 규명이 먼저라며 반대했고, 교통정리 역시 쉽지 않다. 우선은 개헌을 권력 구조만 바꾸는 원포인트로 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지만, 기본권을 비롯해 복지 환경 통일 등 전반을 다뤄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권력 구조만 손댄다 하더라도 대통령 중심제에서의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주장이 난무한 상태다.

결국, 대통령 주도의 강력한 추진과 달리 다양한 이해가 표출되는 국회 주도의 개헌이 국론을 집약하는데 힘들더라도 개헌의 주 무대는 국회여야 한다. 그리고 그 무대에는 국민의 뜻과 열망이 담겨야 한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