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킾오온 러닝 킾온 하이디힝~~"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한글로 적어가며 엉덩이를 들썩 거렸던 옛 모습이 떠올랐다. 소리가 들리는 대로 적은 종이가 꼬깃꼬깃해지도록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흥얼거렸던 기억, 샹송을 받아 적을 때는 이응 음절이 반복되는 이상한 발음을 재생하느라 레코드 바늘은 몇 번이고 다시 올려놓아야 했다.

 낯선 이국의 노래를 어설피 따라 부르는 것조차 또래 친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자리가 조각된 장롱 같은 전축과 텔레비전을 자랑하느라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학교 선생님들은 학년 초마다 집안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적어내도록 했고, 텔레비전, 전축, 사진기, 전화, 오토바이 등을 쓸 때마다 어깨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음악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던 부유한 아버지의 취미 덕분에 길거리 놀이보다는 그런 문화를 향유하는 사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이어령 교수의 '흙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수상집을 처음 읽은 게 열 서너 살 되었을 게다. 그 즈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생각에 동의하느라, 외울 만큼 반복해서 읽었으니까. 내 생애 가장 유복하고 행복했다고 기억하는 시간들, 그래서 잊지 못하는 시간들이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갑자기 모든 것이 곤두박질쳤다. 빨간딱지가 붙은 전축에서는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혜택을, 아버지로부터 박탈당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함께 우리 모두는 추락했다. 그 후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은 기억이 없다. 동화 속 풍경처럼 한때 행복에 겨웠던 기억 하나 선명하게 간직한 것으로, 힘든 세상을 용케 버텨내며 지나왔다.

 좋은 곳을 소개한다는 지인을 따라 복자여고 앞 '롤링스톤즈'로 들어갔다. 허름한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오래전 기억이 살아났다. 노벨상을 수상한 밥 딜런의 노래를 먼저 청해 듣는 사이, 정갈한 안방에 놓였던 전축이 생각났다. 이제 제목도 잊었던 곡을 흥얼거리니 주인장이 대뜸 알아듣고 레코드판을 걸었다. 한 곡 한 곡 청해 들으면서 가슴이 뛰었다. 홀 안에 다른 팀이 없고 적당히 어두운 조명 덕분인지 갑자기 찾아오는 흥겨움으로 쪽지를 건넸다. 프라우드 메리, 울리불리, 상하이 트위스트, 킾온러닝. 저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야외전축을 틀어놓고 후미진 공터에 몰려 개다리 춤을 추던 시절이 생생하게 올라왔다. 뜻 모를 소리를 흥얼거리던 시절에는 몰랐던 가사들이 전해진다. 'keep on running' 그렇게 쉬지 않고 뛰어 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의 낭만에 흠뻑 취했다. 이렇게 다시 깨어난 추억을 소중하게 보듬으며 그것이 나의 힘이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팝 가수가 노벨상을 탔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소설이나 시보다 가깝게 대할 수 있는 노랫말, 그것을 문학이라 여겨주어서 참 좋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자리에 들며, 그 사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이다"라는 밥 딜런의 명언에 공감한다. 필자의 직무가 취업을 알선하는 일이어서 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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