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조석으로 찬바람이 불면서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어느덧 우리들 곁에는 가을이 깊숙이 와 있었다. 베란다 창으로 그림같이 들어오는 우암산에는 노을처럼 단풍이 물들어 내려오고 있다. 해가 짧아지면서 한나절 잠깐 손바닥만큼만 햇살이 베란다에 머문다. 우리 강아지들은 베란다 창에 까치발로 서서 목을 길게 빼고는 멀리 오고가는 사람들과 풍경 속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 중이다. 나도 그 부리부리하고 멋진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내가 갱년기 우울증이 심했을 때에 데려온 은총이는 어느덧 여섯 살이 되었다. 태어난 지 백일쯤에 우리 집에 왔던 은총이는 우리 집안에 웃음꽃이 되어주면서 나의 적적함은 채워주었지만, 정작 은총이의 혼자 있을 쓸쓸한 시간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딸 사랑이를 태어나게 해주었다. 모녀지간은 살갑고 서로 애틋하게 지내듯이 우리 은총이와 사랑이 모녀도 서로 의지하면서 긴 낮 시간 빈집을 지킨다.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주인을 알고는 멀리서부터 꼬리를 흔들며 격하게 나의 퇴근길을 반겨주는 놈들이다. 며칠간의 여행에서 돌아오면 기절할 듯이 반가워하며 오줌까지 지리는 녀석들이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내게서 잠시도 시선을 떼지 않는다. 조신한 여인 같은 은총이는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고 발랄한 성격의 사랑이는 사랑스런 눈길로 나만 바라본다. 누가 이토록 나만 바라봐줄까!

 그러던 사랑이가 병이 났다. 시름시름 앓고 있다. 식욕을 잃고 누워서 멀뚱히 생각에 잠기다 눈을 감고 이내 잠에 빠져 들기도 하고 깊은 잠도 이루지 못하면서 극도로 예민해있다. 나와 어미인 은총이가 옆에 다가가면 신경질적으로 짖어대며 물어버릴 듯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그러다가 수시로 베란다에 나가서 목을 길게 빼고 멀리 창밖만 내다본다. 나와 은총이는 슬금슬금 사랑이 눈치 살피기에 급급했다.

 우리 사랑이도 가을을 타는구나하고 생각하다가 걱정이 되어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증세를 듣던 의사선생님이 산책길에서 수컷 강아지를 자주 만난 적이 있냐고 물으셨다. 맞다! 여름 내내 산책길에서 날마다 마주치던 잘생긴 강아지가 생각났다. 부리부리한 눈빛의 그 강아지를 만나면 반가워서 서로 꼬리를 흔들고 얼굴을 부비면서 좋아했었다. 서로 방향이 달라 헤어질 때는 아쉬워하면서 컹컹 짖어댔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산책을 나가지 못하면서 우리 사랑이는 심한 상사병에 걸린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물론 약도 없는 병이었다. 그런지도 모르고 마구 짖어댈 때마다 혼내주고 신문지로 때려주기까지 했던 생각을 하니까 미안한 마음에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우리 강아지들을 좋아하기만 하였지 이놈들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다. 좋아하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이를 위한 특별한 수제간식을 만들면서, 말 못하는 짐승과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좋아하기만 하기보다 얼마나 알고 이해하면서 살고 있는가하고 돌아본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