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가을이려니 싶더니 순식간에 겨울이 왔다. 11월의 창밖 풍경이 스산하다. 무성했던 나뭇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로 이 겨울문턱에 서 있다. 앙상한 가지들이 골목을 휘몰아치며 불어오는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다.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이듯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면서도 굳건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본다.

 하나의 꽃을 피우기까지 빛은 얼마나 떨렸고, 하나의 낙엽이 되기까지 바람은 또 얼마나 불었을까! 먼 훗날, 나 또한 세월의 어디쯤에서 떨어지고 있는 저 갈색낙엽을 닮아 있겠지. 참으로 잠깐 스쳐가는 한순간이 우리의 인생길인데, 세상을 향해 서 있는 나는 내 안에 나로 그득 채우느라 이기심과 자존심으로 옹동그리 쥔 손을 펴지 못하고 미움을 주고 생채기는 내고 있는지!

 영원한 세월 속에 우리의 생을 자로 잰다면 얼마나 될까? 어쩌면 한 점으로도 표시할 수 없을 만큼 짧다는 생각에 어느 것 하나라도, 포도 위를 나뒹구는 저 낙엽 한 잎조차도 소홀히 하거나 허술하게 지나치고 싶지 않다. 그 동안 꿈도 연극도 아닌 현실 속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하며 서툰 삶을 사느라 주위를 둘러 볼 여유조차 없었다. 앙상한 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이 상기된 내 얼굴을 시원하게 보듬고 간다.

 한 줌의 바람결도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데, 세상 속에서 내 마음대로 내 잣대를 들이대고는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다. 한 떼의 낙엽들이 포도 위를 후루루 몰려간다. 초록 빛 수분들이 어디론가 사위어드는 애련한 몸짓들은 생성을 위한 아픔이기에, 또 다른 여름을 품기 위한 초석이기에, 낙엽은 가장 아름다운 현실이다. 나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의 섭리 속에서 언젠가 다가올 소멸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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