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에디슨에게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삼중고(三重苦)의 헬렌 켈러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을 때 그는 헬렌을 향하여 말했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이를테면 높은 성벽으로 주위를 쌓아놓은 것 같이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말에 헬렌도 기가 막혀 "만일 내가 당신과 같은 위대한 발명가라고 한다면 나는 세계의 모든 귀머거리가 성한 사람처럼 다 들을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할 것인데…" 하고 소망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에디슨은 "뭐라고요. 나는 그런 짓을 하면 귀중한 시간만 낭비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인간들이란 들어도 좋고 듣지 않아도 좋은 것만을 지껄이고 있으니까요" 하고 대답해 헬렌을 당황케 했다고 한다. 헬렌은 에디슨에 대해 "생각이 모자라는 사나이", "다른 사람의 고통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해 주지 않는 인정 없는 사람" 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에디슨은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만 충실했으며 남이 자기를 어떻게 보던, 또 무엇이라고 하던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렇게 신념으로 사는 사람들은 오직 자기의 마음의 소리에만 귀 기울인다. 그 소리는 바로 신(神)의 소리요, 양심의 소리다. 따라서 그들은 남이 자기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문제 삼지 않는다. 오직 자기 스스로 자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만을 문제 삼는 것이다. 결단을 내리게 될 때는 "절대로 인기를 마음에 두지 말라"고 강조한 정치가가 있다.

 사람이 커지면 커질수록 반드시 세평(世評)이 격렬해진다. 그렇다고 일일이 그런 것까지를 마음에 두고 있으면 결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 "사람들에게는 마음대로, 멋대로 지껄이라고 하라.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하는 의연한 태도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찌 이것이 정치가만의 문제겠는가. 무릇 어떠한 일을 성취하려고 하는 자는 이른바 세평(世評)에 구애되지 말고 자기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악명(惡名)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개성이 강하다는 것이오, 또 그만큼 강자(强者)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이 흉보지 않을까",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여 결단을 주저하는 것이다. 타인을 의식하면 결단력은 위축되고 마음을 작정하고 어떤 행동을 취할 때는 다른 사람의 눈이나 입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결단력, 실행력을 키워나감에 있어 이것은 불가결한 요소이다. 세상은 힘 있는 자의 몫이고 강한자의 몫이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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