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나라가 어려워지는 건 지도자가 무능한데다 보좌진들마저 제대로 된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 민주 국가에서 이런 대통령이 나오게 만든 국민의 책임도 크다. 능력 있는 인물을 뽑지 못한 것이 순전히 유권자인 국민들만의 책임일까? 인품이 높고 비전을 지닌 큰 인물은 빛을 못 보고, 반면에 함량 미달이거나 편향된 성품을 가진 자, 국가보다 정파의 이익을 추구하는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들로 대선 후보가 채워지는 현재의 정치 시스템도 갈아엎어야 할 악폐다.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호가호위한 자들과 수십 년 간 친자매처럼 지내온 '비선실세'등이 줄줄이 구속되고, 대통령마저 쫓겨날 위기에 내몰린 현재의 청와대 모습을 지켜보면서 권력이 참으로 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레 '간신(奸臣)'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때마침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모씨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간신과 충신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을 해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다.

 간신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그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온갖 비열한 수단을 써서 군주의 눈을 가리고 수많은 인재들을 해쳤으며, 급기야는 나라 자체를 멸망의 구렁텅이에 몰아 넣었다. 천하를 통일한 진을 3대 만에 망하게 한 환관 조고,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나라를 전란으로 몰아넣은 십상시,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고사성어를 만들어 낸 당 현종 때의 이임보, 불세출의 명장 악비(岳飛)를 고문해 죽이고 나라를 금(金)에 팔아먹은 만고 간신 진회. 명나라 희종 때 환관들의 우두머리가 돼 나라를 거덜 낸 위충헌, 사상 최대의 부자가 된 청(淸) 건륭제 때의 화신 등은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유명한 간신들이다.

 우리 역사에도 물론 많은 간신들이 보인다. 고려말의 신돈을 비롯해 수양대군의 권력찬탈을 도우며 피바람을 일으킨 한명회,  여진족을 평정한 남이 장군을 역모로 몰아 처형한 유자광, 청 태종을 떨게 한 임경업 장군을 모살한 김자점, 그리고 조선을 문 닫게 한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이 간신 명부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이다.

 "하늘 아래 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 솔로몬 왕의 말처럼 역사는 유사한 양상을 되풀이 한다. 군왕이 곧 국가와 백성의 주인이었던 왕조시대를 더럽혔던 인간형들이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대명천지인 현대에도 나타난다. 절대권력은 간신들이 발호하는 토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는다. 간신의 해악을 잘 알면서도 계속 이들에게 당하는 건 간신을 구별한 인식할 눈과 명철한 역사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말을 잘 하고 거짓말에 능하며, 권력자의 속마음을 손바닥 보듯 파악하는 재주가 뛰어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간신은 위장에 능해 눈속임으로 부정을 가린다. 옛날엔 오래 해악을 끼치며 명이 길었지만, 감시망이 촘촘하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현 시대엔 빨리 번성하는 폐단도 크지만 또 그만큼 빨리 패망하는 양상이다.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김종, 차은택, 장시호, 안봉근, 이재만, 김기춘, 우병우… 이 정부에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기소되거나 수사대상에 오른 이름들이다. 역사는 이들이 간신인지 충신인지를 가려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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