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시간은 시간 속으로 사위어 간다. 그 시간을 좇아 고운 단풍은 갈색 낙엽으로 변하고 바람은 더욱 세차졌다. 사람들은 두터운 외투를 입고 거리에서 종종 걸음을 친다. 추워진 날씨 탓 만일까! 몸도 마음도 자꾸만 움츠러든다.

 문을 닫고 안으로 충실해져야 하는 계절! 그러나 어느 한 순간에 충실해 질 수는 없다. 얼어붙은 겨울을 이겨 낸 봄부터 뜨거운 여름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열매들을 거둘 수 있듯이, 안으로 충실해진다는 것은 땀과 기다림의 대가를 톡톡히 지불해야만 가능하다.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보여 지는 현재의 내 모습은 지금까지 지나간 시간의 발자국들이다. 철이 없었기에 놓치고 온 시간들, 젊었기에 챙기지 못한 시간들, 미리 준비하지 못해 두고 온 시간들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다.

 좀 더 일찍 철이 들거나, 좀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보기 좋은 삶을 살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연습도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길이기에 그 길은 고독하다. 두렵다. 하지만 우린 그 길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고, 또한 그 선택의 기로에 서면 누구나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반평생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제야 겨우 어렴풋이 알아간다.

 누구든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가장 절절할 때 폭발적인 에너지가 발휘된다는 것을. 전국이 어수선한 요즘 각자의 목소리만 키울 것이 아니라 무엇이 최선의 방향인지 제 서있는 자리를 우선 꼼꼼히 돌아보아야 함이다. 추운겨울을 견디고 따뜻한 봄을 찾아가기 위해 제 살까지 떨어내며 앙상한 가지로 서있는 저 나무들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시간들을 회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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