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명퇴하거나 퇴출되거나.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은 분명해졌다. 조기퇴사나 명퇴에 해당하는 하야를 하던지, 해고 또는 파면에 해당하는 탄핵으로 물러나던지 후년 2월 25일 자정까지로 정해진 대한민국 제 18대 대통령 임기 채우기는 물건너 갔다. 상황을 뒤집을 만한 반전의 카드는 지금으로서는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 정확한 시간만 안 정해졌을 뿐 중도하차의 운명을 피할 방법은 없다.

 그 자신도 이미 지난 달 29일 전격적인 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실상의 하야 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국회에 퇴임 날자와 절차를 정해 달라고 했다. 운명의 키를 넘긴 셈이다. 대통령직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며 버티고 싶기도 하겠지만 역대 최저 기록을 거듭 갱신하며 몇 주째 지지율 4%에 머물고 있는 상태에서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탄핵과 자퇴를 압박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언제 그만둘지도 모르는 대통령의 말에 무슨 힘이 실리겠는가.

 지금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무뇌(無腦)', '조두(鳥頭)' 소리를 듣고, 극단적으로는 미숙아 취급까지 받지만 박 대통령도 한 때는 잘 나가던 정치지도자였다. 98년 4월 대구달성 보궐선거에서 막강한 자금과 조직을 가진 여당 후보를 꺾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고, 2004년 노무현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을 구해냈다. 이런 정치인 박근혜가 왜 한 순간에 몰락의 길로 빠져들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절대로 대통령이 돼서는 절대 안 되는 인간이었다"는 주장에서부터 "공주로만 살아서 세상물정을 모르고 보고서를 해득할 능력도 없는 칠푼이", "판단력이 부족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라는 등의 극단적인 평가들도 쏟아져 나왔다.

 가장 많이 거론된 실패요인은 소통의 부재다. 부모를 흉탄에 모두 잃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보지 못한 그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이었다. 정치인으로서 꼭 필요한 현실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통, 즉 대화를 끊임없이 추구했어야 했다. 반대로 그는 남아있는 혈육들과의 소송을 벌였고, 교류를 거의 단절했다. 결혼마저 하지 않아 서민의 삶을 이해하는데 한계도 갖고 있었다. 대통령이 돼서는 형제들은 물론 일반 시민, 동료 정치인들과의 교류가 끊어졌고, 그 결과 국민들의 삶이 어떤지 현실 감각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참모들이나 행정각부를 책임지고 있는 장차관 등 고위 공무원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해야 하는데 그것도 병적으로 회피했으니 이런 상황에서는 올바른 정책이 나온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는 또 어떤 대통령보다도 전임자의 정책을 폐기처분하는 데는 뛰어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고소영·만사형통·강부자' 등 각종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문제를 노출했지만 자원외교 등 조금 손질해서 승계하면 괜찮았을 정책들도 적지 않았다. 아무튼 대통령의 실패는 대한민국 정치의 실패이자, 경제·문화·외교 등 국가 전 분야에 대한 정책의 실패이며, 결국은 국가와 국민, 사회 전체가 그 짐을 떠안게 된다.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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