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최근 몇 년 전부터 기상이변 때문에 가을의 청명함은 사라지고 여름의 뜨거움과 겨울의 차가움만 있는 거 같다. 그러한 영향인지는 몰라도 지금 우리사회는 극과 극을 질주하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들로 오염이 되어 병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구상에 진정 권모술수와 부정으로 오염되지 않고 아직은 우리의 생각 속에 살아남아 올바른 정신으로 끝까지 우리를 이끌어 줄 마지막 보루는 무엇일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린다. 그 소유욕이 강하면 강할수록 비열해질 수 있는 정도가 심화되어 마음은 오히려 깊은 상심으로 허무해지기 마련인데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비극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불현듯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가 떠오른다. 38세에 아깝게 사망한 푸시킨은 결투를 하다가 죽었다. 한 시인의 생애치고는 대단히 극적이다. 하지만 그의 시는 '외롭고 괴로운 슬픈 현실을 참아내라'고 강조하며 '희망의 삶은 곧 올 것이니 기대하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이란 속고 또 속으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구체성과 현실감이 우리에게 감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자.

 아마도 전국 방방곳곳에서 부패한 정권에 맞서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도 이러한 현실감을 느낄 것이다. 소리 없이 정의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갑자기 세상이 넓고 아름답게 보일 때까지 쉼 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누구에겐가 배신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 그리고 미움과 갈등에 시달릴 때 그것을 멀리 쫒아내기 위한 주문을 읊조리듯 말이다. 우리는 항상 정의만이 살아있는 밝고 희망찬 양지쪽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정의란 흐린 날에도 먹구름을 뚫고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햇살과도 같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정의감이 불타는 눈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사랑해주고 싶다. 하찮고 덧없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그 잊음으로 인하여 정의의 샘물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과다한 욕심은 탐욕이 된다는 사실과 그런 탐욕을 없느니만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을 사랑해 주고 싶다. 창가에 기대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눈이 내릴 것 같다. 눈 내리는 날의 낭만과 설렘을 속삭일 겨를도 없이 우리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에 부패한 정권에서 얼룩진 가슴 아픈 기억만을 더듬어야 할 것 같다.

 푸쉬킨의 속삭임처럼 '슬픈 날엔 참고 견디어라 /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이 시는 바로 정의를 향하고 있다. 그런고로 우리 모두는 다가올 날의 기대와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만 한다. 예컨대 이 시를 쓴 푸쉬킨은 짧으면서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불멸의 시를 통하여 그의 삶은 영원하지 않은가? 흐린 하늘처럼 앞으로의 일들이 아득하여도 정의를 위하여 살다보면 반드시 즐거운 날들이 오리라 굳게 믿으며 우리 국민 모두가 파이팅해서 좋은 결과와 더불어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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