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동지가 가까워져 오는 지난 금요일 저녁 6시, 남쪽에 떠 있는 상현달과 함께 걸었다. 이따금 고개를 돌려 왼편을 보니 처음 출발할 때와 똑같이 곁에 있다. 비록 달은 하늘에 있고 사람은 땅 위에 있지만 달을 동행으로 여기며 걸으니 마음이 통하는 누군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듯이 퇴근길 걸음이 가볍다. 초승달을 본 후 어둑한 길을 나서면 우선 하늘의 달을 찾았다. 몇 번의 흐리거나 비가 내리던 몇 날을 제외하고 달은 보름째 모습을 보여준다. 매일 다른 모습과 다른 방향에서 보여주던 초승달과 상현달에 이어 오늘은 보름달이 뜰 것이다.

 다시 퇴근길, 달을 만날 방향을 힐끗 돌아본다. 절대 변하지 않는 우주의 법칙처럼 지구의 사람 사는 세상도 사람답게 사는 법칙이 존재한다면 지금처럼 어둡던 마음에도 곧 달빛이 스며들어 환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보고 들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이다. 달과 별을 봐야 하고 냇물이 흐르는 소리도 들어야 한다. 또한, 신작 문학작품도 봐야 하며 음악이나 무용공연도 보고 들어야 한다. 개봉된 영화도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며 하다못해 눈물, 콧물을 흘리게 해주는 드라마라도 한 편 봐야 삶이 풍요해질 것이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음악에 심취하면 하루 중 쌓였던 피로가 풀렸다. 간혹 집으로 직행하지 않고 공연장을 가거나 영화관에 들러 객석에 깊숙이 앉아 있으면 무대정면에서 보여주는 장면에 푹 빠져 가슴 속이 뜨거워지거나 머릿속이 맑아졌다. 집에서 무작정 쉬는 것보다 더 큰 효과의 휴식법이다. 그런데 요즘은 음악 대신 스마트폰 속 모 방송의 정치부 회의를 들으며 퇴근한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고 알거나 믿고 싶은 않은 소식을 전해주지만 피할 수가 없다. 필자도 이 나라 국민이므로 내 나라에서 벌어진 야만적 사실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한꺼번에 사실이 쏟아지니 단번에 알아듣기도 벅차다. 설마 하다가 집에 돌아가 다시 자리에 앉아 사실을 알아본다. 각종 신문을 뒤적이며 이말 저말을 또 본다. 사실 속의 괴물 같은 진실도 헤아려본다. 이렇게 이 겨울이 다 지나가도록 새롭게 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인 노란색이 싫다던 여인은 구치소 안에서 겨울 찬바람을 피하고 있다. 촛불을 든 국민에 의해 직무를 정지당한 현 대통령도 관저에서 차분하게 책을 보면서 쉬고 있단다. 그런데 국민은 추위도 무릅쓰고 차가운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화문 광장에서 혹은 각 지역에서 촛불을 들고 밖에 서 있다.

 가족이 물속으로 수장되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유가족의 가슴에는 그날 이후 멈추지 않는 피눈물의 강이 생겼다. 그런데 사건이 생겼던 날, 한가롭게 머리를 손질하고 제때 제 끼니의 밥을 아주 잘 챙겨 먹었던 대통령이 한 말이 가관이다. 탄핵 가결 후, 피눈물이 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 어떤 말인지 알겠단다. 이것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법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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