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직접 준비하는 것도 없는데 아들 결혼 날짜가 가까워지니 맘이 심란해진다. 필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어머님도 말씀은 안 하셨지만 그런 느낌이다. 왜 안 그러시겠는가. 손자라고는 해도 직장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하여 핏덩이 때부터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품에 안고 키우셨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루의 대부분을 손자를 위해 아침밥과 도시락을 싸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다 챙겨주셨다. 어미인 필자는 어미뻐꾸기처럼 낳아 놓기만 했을 뿐이다.

 그런 손자가 할머니 품을 떠난다고 하니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그런 심란함이 행동으로 나타났다. 며칠 전 주민센터에서 우리 담 밑에서 물이 계속 나온다고 연락이 왔다. 이유를 알아보니 어머니가 화분에 물을 준다고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는 깜박 잊고 잠그질 않은 것이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엔 손자의 와이셔츠를 다리고는 전기코드를 뽑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한평생 와이셔츠를 다리신 어머님이시다. 아버님과 아들, 그리고 손자의 와이셔츠까지 평생을 다림질을 하셨다. 이제 더 이상 손자의 옷을 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코드 뽑는 것마저 잊으셨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결혼식을 마친 아들이 신혼여행을 다녀와 선물로 어머님과 필자의 가방을 사왔다. 제일 먼저 할머니께 젤 좋은 거라며 명품가방을 꺼내드린다. 필자가 보아도 색상과 디자인이 근사해 보인다. 할머니를 생각한 아들 내외가 고맙고, 그 가방을 팔에 걸고 방안에서 왔다 갔다 하시며 좋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그러나 저녁 때 아들도 제 둥지로 돌아가고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들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많이 컸다.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필자는 2층에서 내려와 아들 방으로 살림을 옮겼다. 에너지도 절약하고 어머님의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내려와 보니 참 잘했다 싶다. 아침밥도 혼자 드시지 말고 좀 이르지만 같이 드시자고 했다. 원래 식구란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 아닌가. 함께 먹으면서 하루 있었던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다. 필자는 말하기보다 거의 듣는 편이다.

 우리 어머님은 몸과 맘이 참 건강하신 편이다. 가끔 그 이유를 혼자 생각해본다. 어머님은 뭐든지 스스로 하시려고 하고 주위 사람, 특히 가족을 편하게 해주시려고 무던히 애를 쓰시는 고운 심성이 몸과 맘을 단련시키지 않았나 싶다. 평생 손자 뒷바라지로 바쁘게 움직이시다 어느 한 순간 할 일이 없어지고 보니, 점점 쓸모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시나보다.

 이제 잘 죽는 일만 남은 것 같다는 어머님의 말씀이 명치에 가시처럼 와 박힌다. 손주와 며느리 밥 해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당신이 할일이 점점 없어지다 보니 나약한 생각을 하시나보다.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어머님께 중요한 처방은 맛있는 음식을 해달라고 자꾸 보채는 것이리라. 내일은 울 어머님 표 호박죽을 해 달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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