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한국 사람들은 성씨에 대해서 각별한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성을 간다!", 어떤 일을 확신을 가지고 장담하거나 맹세할 때 성씨를 갖고 내기를 할 정도로 한국인에게 있어서 성씨는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토록 성씨를 아끼는 한국인에게 일제는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한국인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나로선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인 모자모례(牟自毛?), 백제인 귀실복신(鬼室福信), 고구려인 연개소문(淵蓋蘇文)처럼 네 글자 이상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흔히 '이름 석 자'라고 하지만 한국인의 성명이 처음부터 세 글자였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당나라의 힘을 빌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법제도나 행정조직을 도입하면서 덩달아 사람의 이름까지도 중국풍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한국인의 성씨는 현재 286종이 알려져 있다. 그중 김(金), 이(李), 박(朴)의 3대 성씨만으로 45%를, 거기에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등 10대 성씨까지 포함시키면 전체 인구의 64%를 차지한다고 한다. 대부분 외자지만 독고(獨孤), 제갈(諸葛), 선우(鮮宇)와 같은 두 글자 성씨도 있고, 드물게 궉(?), 낭(浪), 내(乃), 미(米), 삼(森), 아(阿), 애(艾), 야(夜), 화(化)와 같은 희기성씨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일본인의 성씨는 4세기에서 6세기 야마토시대(大和時代)에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하사한 '우지(氏)'나 '가바네(姓)'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 후 시대가 내려가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서민들에겐 성씨가 없었다. 에도시대(1603~1867)의 기록을 보면 농민이나 정인(町人) 같은 서민계층에는 대부분 이름만 있고 성씨가 보이지 않는다. 무사들이 지배했던 시대에 정식으로 성씨를 붙일 수 있었던 것은 귀족 또는 무사와 같은 특별히 허락된 사람들뿐이었다.

 일본의 10대 성씨로선 사토(佐藤), 스즈키(鈴木), 다카하시(高橋), 이토(伊藤), 와타나베(渡邊), 사이토(齋藤), 다나카(田中), 고바야시(小林), 사사키(佐佐木), 야마모토(山本) 등이 있는데 한국과 반대로 두 글자 성씨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한자로 표기했을 때 가장 긴 성씨는 '八月三十一日'라고 쓰고 '호즈노미야'라고 읽는다. 음절로 셌을 때 가장 긴 성씨로선 '東西柳'씨가 있는데 이것을 '히가시요츠야나기'라고 읽는다니 한국인들에겐 희한하다 못해 괴상한 일일 것이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의 성씨가 10만개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中島'를 '나카지마'라고도 읽고 '나카시마'라고도 읽는 것을 각각 다른 성씨로 카운트한다면 그 수는 30만개가 된다고도 한다. 가히 세계에서 가장 성씨가 많은 나라가 일본이다. 사람이 많기로는 압도적인 세계 1위, 현재 인구가 14억에 육박하는 중국의 성씨가 2,600개 안팎이라고 하니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도 성씨가 없는 가문이 있는데 그것이 황실이다. 다양성과 특수성, 성씨만 봐도 역시 일본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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