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뎅~ 뎅, 아침을 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이불 속에서 어렴풋이 듣던 장닭의 새벽 울음소리와는 사뭇 다르지만 묘하게도 일체감이 느껴진다. 미명을 깨우는 소리다. 정유년 새해 첫날 해맞이를 나섰다. AI 발생으로 인하여 공식행사는 취소되었지만 백곡호 제방 위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든다. 나름대로 꿈 하나씩 가슴에 품고 새로운 다짐을 위해 부지런을 떤 발걸음이다. 지역이다 보니 아는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서로 덕담을 나누며 동녘을 향한 모습이 경건하다.

 이미 동살이 잡히고도 남을 시각인데 좀체 햇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 수상한 세월에 새해맞이조차 쉬 허락을 해 주지 않는 것인가? 제방 아래로 역사테마공원과 그 안에 위치한 종박물관이 희뿜하게 내려다보인다. 몇몇이 발길을 돌리면서 종을 울리고 있나 보다. 진천의 종박물관 입구에는 선덕대왕신종이 자리하고 있다. 소원지에 소원을 적어 매달고 종을 세 번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방문객들이 종종 종을 울리곤 한다.

 선덕대왕신종은 우리에게 '에밀레종'이라고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소신공양으로 만들어졌다는, 그래서 종이 울 때마다 '에밀레~ 에밀레~' 마음을 파고드는 신묘한 소리를 낸다는 설화를 안고 있다. 비록 설화일 뿐이지만 가슴 아린 전설이 알알하다. 그만큼 깊고 그윽한 소리를 빚어내기까지 절체절명의 고통이 녹아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세속의 번뇌로부터 벗어나 인간 본연의 심성으로 빚어낸 작품이기에 영원한 신비성을 지니는 것일 게다. 그래서 종은 내게 이방의 물성이면서도 하나의 성물로 자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종, 그것은 애초부터 종교의식에서 쓰이던 악기에서 비롯됐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선을 불러 심금을 다스려나가는 도구였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 사람이 빚어낸 소리, 그 울림을 어떤 이는 하늘 꽃으로 내리는 깨달음의 소리라 했다. 불교에서 예불을 종소리로 알렸듯이 성당의 새벽 종소리나 교회 종탑의 울림은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황혼녘,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며 일손을 놓고 경건하게 신에게 기도드리는 장면으로 밀레의 '만종'을 떠올린다. 종소리를 통해 자신의 염원을 절대자에게 전하고 있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2017년 정유년을 맞으면서 진천 종박물관에는 또 하나 소망의 종틀을 세웠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간절한 소망을 담은 자그마한 종을 걸 수 있도록 하였다. 신성한 종의 의미와 꿈을 아로새긴 작은 종들이 조롱조롱 소리를 내며 어울려 천상으로 오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젊은 연인들이 찾아와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서약한 종이 앙증맞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본다면 어찌 미소가 머물지 않겠는가. 자식을 위해 비손하던 어버이가 달아 놓은 종에선 한없는 평온을 느낄 수 있다. 건강을 기원하며 제2의 인생을 꿈꾸는 노부부의 종에서 가슴 뭉클함이 묻어난다. 종박물관에 세운 소망의 종에 작은 염원의 종을 매다는 행위는 혼자만의 욕심이 아닌, 모두의 염원을 함께 손잡고 하늘에 고하고자 함이요, 꿈과 추억을 노래하는 울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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