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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한옥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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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9  16: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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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자 수필가]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 누군가를 간절하게 설득하려고 들려고 하면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한다. 표정이나 행동도 말의 양과 비례해 더욱 강해지고 눈짓 손짓도 심상치 않게 변한다. 발짓도 서슴지 않을 기세다. 더구나 묻지 않는 말을 저 혼자 잘한다. 그러나 상대를 끌어당기는 화술의 원칙은 말을 많이 하기보다 듣기이다. 최근 국회청문회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던 이유는 묻는 이나 답하는 이의 말 내용 때문만이 아니다. 서로 마주 보고 말을 하나 각자 면벽하고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대화의 흐름에 시청자는 질려버릴 정도다.

 새해 벽두부터 귀 기울여 들어도 파악이 되지 않는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변명을 듣고 또 듣다가 한숨을 쉬었다. 가슴이 콱 막혀서다. 두 팔을 연신 휘저으며 거칠게 말을 하는 모습은 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이웃에서 흔히 보는 그저 그런 이의 변으로 들어야 손색이 없겠구나 싶었다. 더구나 기자라는 사람들은 무기도 없이 전쟁에 나간 병사다. 카메라와 노트북, 녹음기, 스마트폰을 지참하지 말라는 지시대로 착실하게 참석을 하고 열심히 경청하고 있으니 순종의 도를 넘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자세다.

 생활고와 높은 취업 문턱에 지친 청년층이 투표를 외면하고 정치 무관심 층으로 전락한 것은 체념해서다. 지위와 신분, 부의 고하를 막론하고 한 사람당 한 표가 주어지는 소중한 투표권을 버리는 것은 할 말을 포기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를 외면했다는 증거다. 말은 때와 장소, 그리고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제 가치가 빛나는데 우리는 말에 대해 넘치고 모자란다.    

 '허위를 반박하지 않으면 진실이 된다'는 영상물을 보다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1,112명이 사망한 사건의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재판 1심 선고 소식을 들었다. 원인 미상의 폐 손상에 대해 6년 만에 내려진 형량은 겨우 7년, 혹은 무죄였다. 국가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그것에 대해 단 한마디도 규명을 못 한 채 유가족과 피해자 가족이 울부짖으니 마음이 아팠다. 뱃속의 자식과 아내를 잃은 남편은 진실 규명을 위해 생계를 포기했다. 이 사건을 그저 나의 불운으로 돌리고 잊어야 하는 일이냐고 고 최다민 양의 엄마는 절규한다.

 그뿐인가. 세월호 유가족과 아직도 시신조차 찾지 못한 가족도 매일 피를 토하며 말을 한다. 집회라도 나가서 촛불이라도 들어야 가슴 속 응어리를 다독일 수가 있다. 허위를 반박해야 진실을 규명할 수 있으니 추위와 생계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가는 것이다. 남아 있는 가족끼리 집에 웅크리고 있으면 말문을 닫히기에 광장에 나가 서로 소통하고 국민의 권리에 관해 토론을 한다.

 말을 해야 할 국민이 말을 할 수 있는 곳은 추운 광장뿐이다.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분함의 열기를 식혀줄 곳이 그곳 밖에 없으니 가진 옷 중에 가장 따뜻한 외투로 중무장하고 서성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렇게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국민이 많은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고 잘못을 실토하며 정작 자기반성을 해야 할 사람들은 숨었다. 말다운 말과 사람다운 사람의 실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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