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아들 결혼사진을 보다가 둘째 여동생 가족사진에 눈길이 멈춘다. 사진을 바라보는 내내 가슴이 짠하다. 동생은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강원도 동해시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교통이 편리하지만 이전엔 정말 많이 불편 했었다. 여름 휴가철만 되면 형제들이 모여 청주에서 기차를 타고 제천에서 갈아타고 묵호까지 다니곤 했다. 바다가 없는 시골에서 자란 우리는 동해의 맑고 깨끗한 해수욕장에서의 휴가는 마냥 행복했다. 어려서 쉽게 먹지 못 했던 오징어와 해산물도 원 없이 먹었다.

 그러나 정작 둘째 여동생은 결혼 후 삶이 순탄치 못했다. 제부랑 나이차도 많고 성격도 맞지 않아 맘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형제들의 강원도 여행도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삶이 많이 힘들고 지쳤는지 동생은 이혼을 언급했다. 지금이야 이혼이 다반사이지만 그 때만 해도 이혼을 큰 흠으로 여기던 때였다. 동생이 이혼을 하면 부모님이 견뎌야 하는 고통이 너무 심할 것 같은 생각에 많은 고민을 했다. 먼 거리를 달려가서 말릴 수도 없고 전화 통화도 어려워 난 수시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직장에서 연가를 자주 낼 형편도 안 되다 보니 편지로나마 동생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져줄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편지 때문인지, 부모님을 생각해서 그랬는지 이혼은 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일 욕심이 많은 동생은 무엇을 하든 일등을 해야 하는 근성이 있었다. 동생은 교장선생님이 꿈이었다. 하지만 이런 꿈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정기 검진 결과 암 이라는 판정에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열심히 치료를 하고 암과 사투를 벌였지만 야속하게도 다른 곳으로 전이까지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고 사명감에 불타던 교직도 명퇴를 하고 투병중인 동생을 보면서 차라리 그때 이혼을 하게 할 걸 하는 때 늦은 후회가 밀려든다.

 동생의 어려움은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주변의 눈초리만 의식한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 동생과 나는 어릴 때부터 함께 한 시간이 많았다.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도 많이 했고, 중학교 때부터 대학 다닐 때까지 자취도 같이 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해서 그런지 더 마음이 간다. 필자의 맘도 이리 아픈데, 엄마는 항상 노심초사이시다. 암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구해 보내주고 계시다. 가까이 있는 형제들은 자주 모였지만 둘째는 거리적으로 멀다보니 거의 못 오다 방학이 되어야 오곤 했다. 자식들 모두 엄마에겐 소중한 새끼들인데 둘째는 항상 엄마와 형제들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서로 바쁘다보니 마음만 있고 아픈 손가락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여력들이 많지 않았다. 따뜻한 봄이 오면 휴가라도 내어 둘째랑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볼 계획이다. 아들 결혼사진에서처럼 조카들과 전 가족이 찍은 환한 그 행복한 얼굴로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길 기도한다. 지금은 비록 아픈 손가락이지만 똑 소리 날만큼 영특하고 야무진 둘째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길 정유년 새해 소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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