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살림을 소홀히 했었다. 냉장고의 채소 칸을 열자 일회용 비닐봉지에 대충 넣은 채소들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인다. 구조단이라도 된 듯이 식탁 위에 빠르게 꺼내 놓는다. 한참을 꺼내도 끝이 나지 않는다. 파 잎은 바닥에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과일 칸은 어떤가. 언제쯤 과일로서 본분을 다 할까 기다리다 지치고 주름진 놈들이다. 검은 반점이 가득한 사과와, 손가락이 쑤욱 들어가는 배를 꺼내 봉지에 담았다. 식탁위에 쌓였던 식품들을 쓰임새 있는 놈은 산뜻하게 다시 포장을 하고 도저히 가망이 없는 놈을 가차 없이 분리 통에 넣었다.

 지구 반대편 가난한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먹지 못해 기아에 죽어 가고 있단다. 어느 구호 단체에서는 밀가루, 콩가루, 설탕, 소금이 재료의 전부인 영양 죽을 만들어 눈동자조차 움직임이 없는 아이들에게 두 시간에 한 차례씩 먹인다고 한다. 며칠간만 먹이면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회복이 된다고 했다. 먹을 것이 부족해 전쟁 같은 삶을 살아야하는 그곳을 생각하면 남아도는 먹을거리를 버려야 하는 일이 죄스럽다.

 음식물 분리수거 통 앞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뚜껑을 열었다. 보기엔 멀쩡한 돼지고기가 있고, 자르지도 않은 수박이 뒤섞여 넘칠 것 같다. 뚜껑을 닫고 옆의 통을 열었다. 그것 또한, 음식물로 가득 차 뚜껑이 제대로 닫히질 않는다. 마지막 통을 열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가득 채워지지는 않았으나 마른 나물들이 곱게 앉아있다. 사람은 과식으로 배가 터질 것 같고 음식물 쓰레기통도 버리는 게 많아 터지겠다고 소리치는 것 같다. 누가 볼세라 재빠르게 자리를 피하는 나의 발걸음을 따라 부끄러운 양심이 쫓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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