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신분을 확인하고서야 육중한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높은 담 밖에서는 다른 세상으로 느껴졌던 곳이었는데 마치 아담한 시골 초등학교 교정처럼 마음에 와 안긴다. 오늘은 문학회 연중행사로 미평고등학교 학생들의 백일장 행사가 있는 날이다. 푸른 실내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 앉았고 행사가 시작되었다. 외부에서 온 방문객을 바라보는 시선은 경계심과 반가움이 교차되는듯했다.

 행사진행을 도우면서 아이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흠칫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저토록 맑고 선한 눈빛으로 어떻게 이유 없는 주먹을 휘두르고 남의 물건을 탐했을까! 학생들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학교의 교육현황과 학생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예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양지바른 담벼락에서 아이들은 두런두런 햇볕을 쬐면서 눅눅한 마음을 말리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시설과 선생님이 계셔도 부모의 사랑만 할까! 결손가정에서 자라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원인이 크다고 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면서도 태어날 때는 미완의 모습이다. 소나 말처럼 어미의 뱃속에서 떨어지면서 겅중겅중 뛰지도 못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부모의 극진한 사랑 속에서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게 되며 걸음마를 배우면서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어 돌아설 때 서로 자식을 차지하려고 싸웠었는데 요즘은 자식의 양육권을 서로 포기하겠다며 싸운다. 짐승도 새끼를 낳으면 진자리 마른자리를 가려서 누이고 적으로 부터의 보호를 위해서는 갈기를 세운다. 무책임한 어른들의 잘못으로 받은 상처를 스스로 다스리고 있는 모습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청소년기의 애정결핍은 욕구불만을 낳고 욕구불만은 범죄를 유발하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특히 모든 사물을 입으로 탐색하는 구강기 시기인 유아기에 충족되지 못한 욕구나 애정결핍은 성장한 후에 성범죄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보고가 있다.

 인간에게 시작도 가정이고 끝도 가정이라는 말을 떠올려 보면서 새삼 가정의 소중함과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무표정한 얼굴에 먼 곳에 가있는 그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원고지를 눈앞에 두고 유순하게 빛나는 그들의 눈빛을 보았다. 하얀 원고지위에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 놓는다. 다 채우지 못하는 빈칸에는 눈물로 점을 찍는다. 세상을 향한 칼날 같은 원망도, 증오도 원고지 위에서는 순백의 그리움이 된다. 아마도 오늘밤 그들은 꿈속에서라도 엄마의 달큰한 살 냄새를 맡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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