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전문대 요업과 졸업한 후
해강 유근영 선생 가르침 받아
자유분방한 분청사기에 매력
대이을 막내아들 있어서 든든
올 봄 증평에 새 가마 열 계획

[충청일보 오태경기자]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사단법인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로부터 한국 무형문화유산 도자기 부문 명장으로 지정된 무석 이용강 명장(사진).
 
이 명장은 지난해 1월 도자기 부문 전통사기장 명장으로 지정됐다.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로부터 한국 무형문화유산 명장 칭호를 받은 사람은 전국에 24명에 불과하다. 충북에서는 이 명장이 최초로 지정됐으며 현재까지 충북에서 유일하다. 이 명장이 명장에 지정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었다.
 
이 명장은 "지금까지도 완전한 청자 재현을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옛것의 연구가 부족한 것 같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는 "비취색 고려청자는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고려청자 천하제일이라고 극찬했듯이 유약은 투명하고 얇으며 태토 속에서 우러나온 빛깔이 옥과 같은 색을 내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러나 현재의 청자는 고전을 공부하지 않고 편리한대로 잘 빚어지고 말리거나 구울 때 깨지지 않는 흙을 조합해 사용하려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보니 태토가 희어지고 그것을 청자색으로 내려면 유약에 푸른색 안료를 잔뜩 넣어 두껍게 바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돼 옛것의 재현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바닷가에 청자 도요지가 분포돼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문헌과 구전을 통해 바닷가 흙이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수십차례 실험을 거쳐 청자를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이후 오래전부터 많은 지도를 해주던 임영주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에게 보고해 기술을 인정받게 됐으며 한국 무형문화유산 도자기부문 명장으로 지정받게 됐다.
 
이 명장은 홍익전문대 요업과에 입학하며 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홍익전문대를 졸업한 뒤 경기도 이천으로 전승도예도제수업을 떠나 당시 국내 유일 무형문화재였던 해강 유근영 선생의 해강청자연구소에 입문해 고려청자의 재현에 대한 연구를 하게됐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이 명장은 오사카예술대에서 공예과 도예전공을 졸업했으며 이와 함께 박물관학 학예사 석사자격을 취득했다.
 
도예외에 박물관 학예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것이 뜬금없어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도예를 향한 이 명장의 열정이 숨어있었다.
 
이 명장은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는 고려다완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됐는데 직접 만져보면 큰 공부가 될 것 같았다"며 "박물관 큐레이터가 되면 직접 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박물관학예사 공부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같은 열정으로 일본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한 이 명장에 대해 일본 언론도 주목하며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한 많은 언론사에서 그를 취재하기도 했다.
 
이후 영국 유학길에 오른 이 명장은 수십년간 일본과 미국, 중국 등을 누비며 수많은 개인전과 기념전을 열며 우리 도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도예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자연스레 언어도 익혔다.
 
평소 어학공부를 좋아한다는 이 명장은 일본어는 물론 영어와 중국어 등 4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일본과 영국 유학하면서 자연스레 익힌 부분도 있고 워낙 어학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익힌다는 것도 도예만큼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이 명장의 작업실에는 외국인 수강생이 유독 많다.
 
이 명장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도예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며 "아무래도 그들과 대화하는데 불편함이 없다보니 외국 수강생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단순히 도예에 대해서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한국 예술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40년 도예인생을 맞는 이 명장이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자기는 분청사기다.
 
분청은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려말 나라가 어려워지고 정치가 혼란해지면서 청자 문화도 같이 쇠퇴하게 됐다.
 
이후 조선이 들어서면서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되고 자기의 색깔도 청에서 백으로 변화됐는데 이 과정에 분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초기 분청은 청자쪽에 가까웠고 이후 점점 백자쪽으로 색이 변화했다.
 
이 명장은 "청자에서 백자로 옮겨간 것이 한 번에 바뀐 것이 아니라 150년의 기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바뀐 것"이라며 "청자가 가지고 있는 기법과 백자의 회화기법도 다 분청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 분청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분청은 상당히 소박하고 서민적이며 자유분방하다. 이런 특징이 분청의 매력이며 특히 일본인들이 분청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40년 도예 외길을 걸어온 이 명장. 이제 후학을 통해 한국 도예의 길을 계승해야 하는 그는 막내 아들이 있어 든든하다.

"기특하게도 막내아들이 도예의 길을 걷고 있다. 이천 도예고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 도예과에 다니고 있는데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 그렇게 뿌듯하고 기특할 수 없다"는 이 명장은 "도예가는 흙의성질 등 여러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춘 팔방미인이어야 한다. 이런점을 아들이 잘 배우고 익혔으면 한다"며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명장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예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한다.
 
증평군의 도움으로 현재 청주 도심에 있는 작업실에서 벗어나 올 봄 증평으로 이전해 새로운 가마를 열 계획이다.
 
이 명장은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며 "더 많은 학생들에게 체험을 통한 도예의 매력을 알리고 가르쳐주기 위해 자리를 옮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문화가 얼마나 훌륭한 문화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볼 때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문화란 아는 만큼 보이고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남은 도예인생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을 알려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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