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지난해 말 32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공로연수에 들어갔다. 흔히들 얘기하는 퇴직이라는 것을 한 것이다. 어차피 공무원들은 정년이 법에 규정되어 있어,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퇴임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었기에 마음에 준비는 오래전부터 해왔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가끔 은퇴 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얘기가 나오면 은근히 걱정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지난 해 말에는 편안히 앉아 쉴 수 있는 안락의자를 생일선물이라며 사 주었는가 하면, TV가 고장 나자 잘 됐다는 듯이 대형TV를 새로 구입하기도 했다. 덕분에 잠이 안 올 때면 창가에 앉아 사색을 하기도 하고, 짬짬이 영화감상을 하기도 하니 아내의 배려가 고맙기만 하다. 아내의 배려가 큰 만큼, 늘 함께 출근했던 아내가 혼자 출근하는 뒷모습을 보면 왠지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지난 해 초부터 주위 사람들이 퇴직을 하면 어떻게 지낼 것인지 묻고는 했었다. 처음에는 걱정해 주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어차피 맞이해야 할 퇴직이라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를 지어 볼까? 자격증을 따 볼까? 여행을 다녀 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우선 내가 좋아하면서 노후생활에 유익한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또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먼저, 합창단원으로서 자신이 없던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성악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아울러 기타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레슨을 받기 시작하였고, 그 후 몇 개월 동안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했다. 한편으로는 틈틈이 살아 온 과정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언젠가부터 새벽 2시쯤이면 잠이 깨는 습관이 생겼는데, 글쓰기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하다 우연히 수필가로 등단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지난 1년은 그렇게 참 바쁘기도 했지만 보람 있는 시간들이었다.

 요즘 나는 직장을 다닐 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파트 주변을 산책한다. 그러고 나서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대충 집안정리를 한 후 책도 읽고, 기타도 치면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가 되면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간다. 처음 배우는 것이니 눈으로는 악보를 보랴, 왼손과 오른손을 함께 움직이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무언가 새롭게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합창단에서 문학회에서 기타 동아리에서 새롭게 사람을 사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외출을 할 때면 으레 책 한 권 들고 길을 나선다. 학창시절에도 하진 않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를 보고 우리 딸들이 "베짱이 아빠 신났어요."라고 부러운 건지 놀리는 건지 모를 말을 한다.

 지난 해 말 퇴임식장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퇴직을 앞둔 저에게 사람들은 아쉽지 않느냐고 묻곤 합니다. 그 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있는 곳을 떠나야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쉽기보다는 조금은 설레기도 합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어떤 길인지 아직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무언가 생각하고 배우다 보면, 그 길 또한 조금씩 열리지 않을까? 오늘도 누군가 전화를 하면서 대뜸 하는 말이 "놀으니까 어때요?"라고 한다. "좋아요"라고 대답하면서 속으로는 "노는 것 아닌데, 공부하고 있는데"라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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