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강 한국무형문화유산도자기명장

[이용강 한국무형문화유산도자기명장]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안다. '온고지신'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그 옛것의 중심이 '역사'인 것이다. 1979년부터 또다시 발굴을 시작한 홍산문화 유적은 인류문명 4대발상지보다 1~2천 년 전의 유물들이 출토돼 나와서 고대의 역사를 새로이 써야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그 확정적 증거로 즐문토기와 빗살문 토기가 발굴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발해지역과 한반도에서 발견된 신석기유물 토기들의 재질과 모양, 구워진 형식들이 일치한다고 판명되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보아 홍산문화 소하서유적은 우리역사의 고조선에 해당되며 동이족 문화권이 북으로는 러시아 접경인 송화강 유역에서 요하, 난하, 황허를 아우르며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 곡부 (지금의 산동 반도 지역)에 이르기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화민국의 역사학자들은 앞 다투어 뒤늦은 황하문명 발상지론을 버리고 홍산문화를 그들에 역사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란 허울로 역사속지주의 즉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속한 모든 곳의 역사는 중화민국의 것이다"라고 발표한 것인데 상당한 모순이 있는 정책임에 틀림없다.

 그 모순의 이유는 '중국'이란 국호는 지극히 근세에 와서 씌어진 것으로 1912년 청나라의 '선통제'가 퇴위하고 청이 멸망하면서 중화민국이 수립되어 최초의 국회선거를 통해 '위안스카이'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씌어졌으며, 후일 '마오쩌뚱'의 인민해방군이 공산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본격적인 '중국'이 시작되는 것이므로 그 이전의 역사는 각 나라의 국호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고구려가 700년 넘는 세월에 걸쳐 하나의 왕조를 유지하는 동안 지금의 중국지역에는 한, 신, 후한, 위, 촉, 오, 진, 북위, 양, 수, 당나라 등 수없이 많은 나라들이 명멸해 갔으며, 그 왕조의 수명이 길어야 수 십 년에 불과한 국가들이 태반이었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는 걸핏하면 모든 문화와 문명을 실체도 없는 옛날의 '중국'으로부터 받아온 것처럼 말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은 '일제의 식민사관'이 가져다준 패악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

 <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이라는 책을 쓴 김정민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고조선에 해당되는 선사시대는 놀랍게도 지금의 UN과 같은 국가 또는 부족 연합체로서 중원의 드넓은 목초지를 돌아가면서 소유했던 시기라 말한다. 그런 유목민족들이 농경사회로 접어드는 신석기 시대가 되면서 정착하게 되고 문명의 발상지가 되는 홍산문화 유적지가 이루어 졌으리라 짐작된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잘 알지 못하는 졸필을 함부로 운필하기에 어려웠던 내게 소고를   피력할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 용기를 준 충청일보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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