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준 청주대 교수

[정창준 청주대 교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부부처 중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모진 한파를 맞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수장이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3년차를 거치면서 유진룡, 박종덕, 조윤선 씨로 세 차례나 책임자가 불명예스럽게 중도하차하게 되는데, 요즘 특검수사가 정점으로 달려가면서 여러 증인들과 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새롭게 드러나는 중도하차 사유 중 유진룡 전 장관의 사유가 다른 두 전직 장관과 대조된다.

 박종덕, 조윤선 전 장관의 경우 재직 중 비정상적인 국정업무의 흐름을 감지함에도 불구하고 문제해결의 조치에 소홀했거나 결단력 있는 업무처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종덕 전 장관의 경우, 필자와 친분은 없으나 대학의 후배인 관계로 몇몇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똑같은 의견들이 잘못된 일처리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그 상황을 빠져나오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동정 어린 시선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인식은 한국인의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연줄의식이 일으키는 현실 판단 망각현상으로 보인다. 연줄이 닿는 그 어떤 상대가 처한 상황에 대해 동질성과 공동체 의식으로 한없는 동정심을 보내는 것으로 정작 어려움에 처한 대상에게는 진정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꽌시' 문화가 있듯이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연고주의나 연줄은 대인관계의 망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유지된다. 연고주의는 한국인의 가치체계, 행동양식, 그리고 사회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연령, 성별, 지역, 교육수준, 그리고 사회경제적 지위 등을 초월하여 광범위하게 사람들을 응집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그리고 연고주의를 중시하는 사회는 집단적 가치를 중시하는 인간관계를 낳으며, 집단의 신념이 개인의 신념 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아를 기초로 한 '나'에 앞서서 자신이 속해있는 '큰 나'인 내집단의 신념이 줄기차게 우리를 구속하는데, 마침내는 공(公)과 사(私)의 구분까지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학연줄의 가치는 구성원 전부에게 강력한 구속력으로 작용해서 공정한 입장에서 여러 학교를 관리해야 하는 교육공무원도 "공평해야 한다"는 바른 자신의 개인적 가치관을 일시 망각하고 자신의 모교에 유리한 조치를 취하는 일도 생긴다.

 이처럼 전통적 가족주의 및 지역공동체 의식의 연장으로 뿌리내려온 연고주의는 한국문화를 '연줄문화'라고 규정할 만큼 한국인의 가치 체계, 행동양식, 그리고 인간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적 커뮤니케이션의 강한 연고주의적 편향은 내집단 성원들에게는 개방적이지만, 외집단 성원들에게는 폐쇄적인 대인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고착시킨다. 최순실과 박대통령과의 수십 년에 걸친 기나긴 연줄도 바로 이러한 폐쇄적인 연줄의 부정적 측면이 괴물처럼 불거진 결과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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