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4개월이 넘었지만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공직유관단체, 그에 준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대상으로 지난 해 9월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적용 대상자는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국가인권위원회, 중앙행정기관 및 그 소속기관, 지방자치단체, 시·도 교육청, 공직유관단체, 공공기관 운영법 제4조에 따른 기관 종사자 △각급 학교, 사립학교법에 따른 학교법인,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언론사 임직원 등이다. 정부는 이 법의 전체 적용 대상기관은 4만 여개, 직접 적용 대상자는 약 240만 명, 배우자를 포함하면 약 40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나 이들 대상자와 접촉해 부정한 청탁을 하거나 금품을 건네면 처벌받기 때문에 사실상 전 국민이 적용대상이다.

 이법은 애초에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의도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것이지만 대상이 자꾸 확대됐고, 시행 전부터 찬반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려 전 국민적 갈등을 빚었다. 관련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우려하며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부정부패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국민여론이 부작용을 거론하면 부패용의자로 낙인찍혀 반대하거나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예상했던 대로 시행 후 농축산업, 화훼산업, 음식업체 등은 직격탄을 맞아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이들 업종에 가장 큰 대목인 연말연시와 설날 특수는 언감생심이었다고 울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연말에 낸 소비자가구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이후 농축산물 선물 수요가 24.4%~32.3% 정도로 급감했다. 농수축산업체의 36%가 매출액이 감소했고, 고객수도 31%나 줄었다고 답해 타격이 심각함을 드러냈다. 화훼업계의 피해는 거의 괴멸적 수준이다. 이 법 시행 후 매출액은 84%, 고객수는 83%나 감소했다.

 우리 경제의 기반인 중소기업의 타격도 엄청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영향 조사에서 69.7%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고, 이 중 70.8%가 어려움이 지속되면 6개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충북도와 같은 중부권 농축산 도농복합 지역인 경기도 이천 송석준 국회의원은 지난해 말 대정부질문에서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농촌과 중소기업, 소상공인이 김영란법 충격에서 생존하기 위한 정부 대책을 요구했다.

 이법의 부작용은 그간 언론에서 수없이 지적했지만 법 제정 당사자인 국민권익위원회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지지한다는 게 유일한 배경이다. 다수 여론이 반드시 정의는 아니다. 경기침체와 세계 경제상황의 악화, 일자리 축소 등으로 이중삼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가 우선 살아나야 하는 게 급선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겠다. 부정부패 잡는다고 나라 거덜 낼 지경이다. 개폐를 재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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