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강 한국무형문화유산도자기명장

[이용강 한국무형문화유산도자기명장]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난성 안양현 북서쪽에 은허에서 다량의 갑골문자가 발견된 경위는 참으로 실소를 금치 못할 사건에서 시작된다. 청나라 말 왕의영(王懿榮)이란 사람이 국자감의 제주로 있었는데 학질에 걸려 고생하던 중 유명한 한의사의 "용골"처방을 받고 백방으로 오래된 뼈를 구하다가 문양이 새겨진 뼈를 보게 되었다. 그것이 갑골문이라는 것을 유악이란 학자와 같이 연구하여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쟁통에 죽게 되고 나진옥(羅振玉)이란 사람이 갑골문 연구를 이어받아 연구하던 중 은나라 유적임을 알아보고 역추적하여 원하(洹河) 소둔촌에서 1908년 은허가 발견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자를 토대로 한자(漢子)가 발전 하였는데 그 주체는 은나라이며 동이족(東夷族)으로 우리민족은 곧 동이에 속하므로 한자는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쓰던 우리의 문자라 할 수 있다. 기원전 10세기경 쓰여진 사마천의 "사기"에는 지금의 중국 최초의 국가를 BC1600년경의 은(殷)으로 규정 한다. 은나라는 탕왕을 시조로 하여 31대 주왕을 마지막으로 550년의 왕조를 마감하게 되는데 주지육림의 미인 "달기"에 빠져 폭정을 일삼다가 주(周)나라의 무왕에게 패하여 나라를 잃게 되고 그 잔존 세력이 동북쪽으로 밀려 산둥과 허베이성 쪽으로 이주하게 되며 그들을 "동이족"이라 부르는 것이다.
 
 옛날 중원의 한(漢)족들이 그들을 세상의 중심이라 하여 "중화사상"을 지어냈고 그 이외의 주변 세력들을 동이(東夷),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하여 오랑캐로 표현한 것은 옳지 못한 것으로, 특정 종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방위개념을 첨가한 한족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동이의 흐름은 진나라의 중원통일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 "후한서"와 "삼국지동이전"에 부여·고구려·백제·신라·마한·진한·변한 등 현재 우리 민족과 직접 관련 있는 나라들이 기록되었는데 이러한 동이와 한족문화의 구분은 흑도(검은 토기)와 관련성이 깊으며 민무늬토기 비파형 청동검 등이 출토되는 지역으로 확연히 구별 지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동이지역 많은 국가들이 지금의 중국에 거의 전역을 통치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당태종 이세민의 본거지가 북방의 동이지역 이어서 당나라를 건국 후 유목문화를 가지고 남하하면서 농경정착의 한족을 교화하였다는 역사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또한 요나라는 만주지역의 거란족이 세운 것이며, 금나라는 여진족의 "아골타"(신라왕족의 후예)가 건국하였고, 원나라는 몽골의 쿠빌라이칸이, 청나라는 금나라의 후예인 누루하치(그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로서 신라의 핏줄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가 건국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이라는 국호는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 국한하여 사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초대문교부장관 안호상 박사가 중화민국을 방문했을 때 대문호 임어당이 "한자는 동이족의 글자인데 어찌 당신들만 모르느냐"고 핀잔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한자가 동이족이 쓰던 우리 글자임을 인정하는 일이며 이에 우리는 한자와 우리글의 역사적 연구와 고찰을 통해 세계의 주역으로 우리문화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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