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명절을 앞두고 아이들 옷장을 들여다보았다. 특별히 구입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아이들에게 받고 싶은 것이 있느냐 물었다. 대충 옷장을 둘러보더니 당장은 필요한 것이 없단다. 요즘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먹이고 입힌다. 형편이 좋아서가 아니라 세태가 아이를 많이 낳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한둘이다 보니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평상시 용돈을 모으고 명절에도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 부모를 도와 구멍가게에서 일하고 수고비로 제 스스로 설빔을 마련한다.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명절 준비는 족히 한 달 전부터 시작된 것 같다. 어려운 형편으로 어머니가 지난해 입었던 것을 한 땀 한 땀 손수 바느질하여 색동저고리의 깃을 덧대고 치맛단을 늘려 주었다. 온 가족의 설빔은 설이 다가올수록 새 모습으로 단장을 하여 나란히 벽에 걸린다. 그 위에는 백일홍이 수놓인 광목천으로 덮어둔다. 어린 마음에 얼른 휘장을 걷어내고 때때옷을 입고 싶었지만 설날이 되어야만 입을 수 있었다.

 내가 살아온 반세기동안 명절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가족끼리 모여 차례를 지내고 맛난 음식을 먹으며 덕담을 나누던 정경이 빛바랜 흑백사진첩 같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례를 여행지에서 간소하게 지내기도 한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하여 불평 한마디 없이 연휴 내내 가게를 지킨 아이들에게 수고비를 후하게 준다. 제 친구들과 요즘 트렌드에 맞는 단골 의류점을 찾을 것이다.

 연휴기간동안 일하느라 고단하지만 가족이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이 훗날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설빔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넉넉하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정성들여 시치고 바느질해 주셨던 설빔과 그날의 풍경이 아름다운 추억이 된 것처럼 아이들도 훗날 지나온 날들을 그려보며 미소 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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