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대학의 방학이란 가끔 인적 드문 사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눈 덮인 교정은 생동감이 넘쳐나던 학기 중과 달리 고요함과 함께 정적마저 감돈다. 겨울방학은 학년마다 느끼는 감회가 다르다 한다. 1학년부터 3학년 학생들은 과거와는 달리 학업에 정진하거나, 친구들과 낭만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식의 호사는 그야말로 옛날 얘기가 됐다. 온통 취업준비이고 취업걱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우리나라 대졸자의 평균 취업률은 50%대에 불과하며 OECD국가들 가운데 단연 꼴찌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의 마음은 추운 겨울 만큼이나 움츠러져 있고, 긴장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난 4년간이 후회스럽고,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함께 졸업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필자가 소속된 과에 S군이 있다. 이 학생은 성적이 뛰어나지 않으나 차분하고 예의가 반듯해 지난 12월 초에 조기 취업된 학생이다. 필자와의 평소 인연으로 수원에 소재하는 모 대형 여성전문병원의 원장님이 추천을 의뢰해 이력서와 추천서를 보냈더니 학교를 믿고 취업을 확정하여 수업이 끝나는 12월 초에 취업이 된 것이다. 그런데 취업이 확정된 후에 병원에 차마 얘기치 못한 비밀이 있다.

11월 중순에 전국적으로 시행된 자격증 시험이 있었는데, 시험 후 다음 날 필자의 4학년 강의가 있어 시험결과도 궁금하던 차 조금 일찍 강의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S군을 포함한 5명의 학생들이 결석을 한 것이다. 어떤 수업이든 결석만큼은 방지하려고 출결을 중요시 해온 터였다. 수업시간 내내 늦게라도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수업이 끝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전 학년 특히 4학년 경우 취업과 연관하여 1교시에 수업시간을 많이 배정토록 하였던 것이 허사였단 말인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1주일을 보내고 다음 주 강의시간에 출석을 부르다 다시 충격을 받았다. S군이 또 안 보이는 것이다. 간신이 수업을 끝내려는데 뒤늦게 나타났기에 동향을 살펴보니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여 즉시 연구실에서 만났다. 취업을 취소할까 아니면 대상자를 교체할까를 얘기했더니 본인이 평소 올빼미형이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과 앞으로 잘 하겠다고 읍소하기에,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버릇을 고치기에는 그리고 긴장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가 보다.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보이는데 지켜보는 자가 더 조바심이다.

 최근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 감사하다고 전화까지 왔다. 그렇다. 시집간 딸을 생각해 보면 저런 철부지, 저런 부족한 것이 어떻게 남의 며느리가 될까 걱정이 태산 같은데 사돈을 만나면 그렇게 칭찬이며 효부다. 세상사 아리송하다. 오늘도 아직 취업이 안 된 몇몇 학생들과 떡국을 먹으며 잔소리 겸 위로를 한다. 성실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으며, '우리'는 '나'보다 똑똑함을 항상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이 반복되어 자꾸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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