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우리는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을 보냈다. 명절은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도 하고 그간의 일들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 기쁘고 즐거운 날이야 말로 진정한 축제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해야할 이 축제의 자리에 종종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날 마음에 입었던 상처가 생각나고 그 서운함이 고개를 드는 순간 그 자리는 더 이상 축제일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상처와 서운함을 토로하다가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급기야는 주먹이 오가는 난장판이 되기도 한다. 그럼 이 기쁜 명절, 진정한 축제의 날이어야 할 그 순간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사실 이러한 현상은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이 함께 모이거나 혹은 마을의 큰 축제를 통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 이처럼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과거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성경을 보면 에스더 서에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가 자신의 나라에 큰 잔치를 베푸는 장면이 나온다. 왕은 자신이 등극한지 3년 만에 온 천하에 자신의 부귀와 영광을 뽐내기 위해 무려 180일간이나 잔치를 베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루는 아하수에로 왕이 자신의 아름다운 왕후 와스디를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 앞에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왕후로 하여금 몸을 단장하고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라 명령을 전했다. 그런데 왕후 와스디는 왕의 명령 따르기를 거절한다. 그러자 왕은 크게 화를 내며 왕후의 직위를 박탈해 버렸다. 온 백성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할 잔치가 한 순간에 다툼과 분쟁, 그리고 이별의 장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왕은 이 잔치를 통해 자신 위엄과 능력을 뽐내려고 했는데 왕후가 자신의 명을 어김으로써 그와 같은 목적이 크게 훼손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왕의 위엄이 훼손된 때는 왕후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절한 순간이 아니라, 왕후의 폐위로 말미암아 온 나라의 잔치 분위기가 갑자기 멈추어버린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즐기는 자리에서 모두가 아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어떠한 형태로든 눈을 드는 순간 잔치 분위기는 완전히 망가지고 마는 것이다. 친척이나 이웃 앞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부요함을 앞세우는 순간 그 자리는 더 이상 잔치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잔치가 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를 따라 한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를 찾아와 이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한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포도주는 잔치의 흥을 돋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곧 잔치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그 지역의 혼인잔치의 경우 정해진 기간의 잔치 날 수를 채워야 그 결혼이 유요함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혼인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큰 문제였을 것이다.

이때 예수는 종들로 하여금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그 물을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말한다. 종들이 그 말에 따라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그 물을 떠갔더니 사람들은 이전까지 맛보지 못한 상급 포도주가 나왔다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포도주를 맛본 어느 누구도 이 포도주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했다.

예수가 일으킨 기적은 단순히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잔치가 진짜 잔치로 잘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이 상급 포도주를 기적을 통해 만들었다고 자랑하지 않았다. 또한 종들에게 사람들이 묻거든 자신이 그와 같이 했다고 대답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자신은 한 발 뒤로 물러서 있었다. 그러자 포도주가 떨어져 흥이 깨어질 뻔한 잔치가 오히려 더욱 흥이 돋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진정한 잔치가 되었다.

우리의 삶이 이와 같은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위의 두 축제의 분위기를 잘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가 중심에 서는 축제는 더 이상 잔치가 아니다. 내 생각, 내 기준으로 보면 어떠한 축제라도 도무지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비우고 축제의 중심에서 한발 물러날 때, 조금은 부족해 보이고 또한 어설퍼 보이기까지 하는 축제가 더욱 흥이 나고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 명절 나는 온 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중심에 서기 위해 노력했는가? 아니면 다른 가족을 그 중심에 새우기 위해 노력했는가? 내 생각의 결정이 내 삶의 축제 분위기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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