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사무실 하얀 게시판 위에 검은 글씨의 일정표가 하루하루 쌓여간다. 해가 바뀌고 첫 달인 지난달에는 통별 동계 일정이 빼곡하게 적혔다. 우리 오근장동은 舊도심과 新도심이 어우러지는 도농 복합동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농촌 동이었으나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인구가 이만 명이 다되어 간다. 舊도심에 있는 15통은 청원군 북일면에서 청주시로 편입된 지역이라 아직 시골의 정서가 많이 남아 있다. 이 지역에는 동계가 이어져 오고 있다.

 동계는 마을에서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모임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연혁을 알고 보니 참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임을 새삼 깨달았다. 동계의 발생은 신라시대부터로 사적인 재산의 소유 관념이 형성되고 촌락이 생겨 정착을 하면서 지금의 동계가 시작되었단다. 전통 촌락은 대부분 촌락의 복리증진과 협동, 동제 등의 공동행사를 위한 경비조달 방법으로 각 가구로부터 평등하게 현물이나 금전을 갹출하여 공유재산을 형성했다고 한다.

 동계는 향약(鄕約)성격을 갖춘 것과 촌락 공동체 성격을 갖춘 것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향약 성격을 갖춘 동계는 덕업상권(德業相勸), 예속상교(禮俗相交), 과실상규(過失相規), 환난상휼(患難相恤)을 반영한 조직적인 것이었다. 동계의 기능으로는 촌락공동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공유재산을 관리하고 증식하는 것이며, 촌락 내의 길·흉사와 공동 작업을 협동하는데 있다.

 동계하는 날 각 마을에서 직원들 점심 초대하여, 경로당에서 부녀회원들이 손수 준비한 음식을 맛나게 차려주신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어르신들의 정성어린 마음과 뭔가 더 나누어 주고 싶어 하는 넉넉함이 더욱 감사하다. 한껏 배불리 먹이고도 떡이나 과일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사무실에서 출출할 때 먹으라며 손에 쥐어 주실 때면 고향의 어머니가 절로 떠오른다.

 각 마을 경로당이나 마을 회관에는 냉장고나 TV 등 물품도 잘 구비되어 있다. 주방시설, 냉난방시설도 잘 되어 있어 1인 가족이 늘어가고 있는 요즘, 특히 시골의 독거노인들에게는 이런 시설이 참으로 유익하게 쓰인다. 따뜻한 방에서 서로 의지 하며 밥도 함께 지어 먹으니 참 좋단다.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인사를 드리면, 여자가 동장이냐고 살갑게 맞아주시며 보기 좋다고 손을 어루만져 주신다. 투박하고 거친 손이지만 평생을 흙과 더불어 고달픈 삶을 살아오신 위대한 손들에서 따뜻한 온기를 전해 받는다.

 어른들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 나오는 현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흙 묻은 신발들이 정겹다. 그중 털신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머문다. 투박하지만 따뜻함이 물씬 풍겨오는 털신을 보자 또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즐겨 신으셨던 신발로 한겨울에도 아버지의 바지런한 발걸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신발이다. 돌아오는 길이 좁아서 교행이 어려운 골목이지만 불편함보다는 정겹게만 느껴진다.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골목, 사람 사는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이곳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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