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햇살이 너무 좋아 무심천으로 산책을 나섰다. 바람 한 점 없는 따사로운 겨울 날씨에 눅눅했던 기분이 봄바람에 겨울눈 녹듯 사라진다. 평생을 무심천을 끼고 살아왔는데도 걸을 때마다 그 느낌이 늘 다른 것은 그 만큼 정도 들고 추억도 많기 때문이리라. 산책로를 조금 벗어나 흐르는 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돌돌돌 소리 내며 흐르는 물에 햇살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흐트러진다. 그러다 물속의 보석 같은 조약돌을 보고 문득 아주 오래 전의 일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인 듯싶다. 방과 후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인솔로 무심천으로 나갔다. 내가 다니던 학교가 청남초등학교였으니 어림잡아 영운동 상수원 근방이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만 해도 무심천은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 여름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목욕을 했고, 겨울이면 두껍게 얼음이 얼어 썰매를 타고는 했었다. 우리들이 한참을 물장구 치고 놀 즈음이면 선생님께서는 조약돌을 하나씩 주워 오라고 했다. 그리고 둘씩 짝을 지어 서로 등을 밀어 주라고 했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다. 청주시내를 통틀어 대중목욕탕이 몇 개 있지 않았던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개울에 나가 목욕을 했었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아주 반질반질하고 제일 예쁜 조약돌을 골라 동무들의 등이 벌게지도록 문질러 주고는 했었다. 그 조약돌의 부드러운 촉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기만 하다.

 맑은 물속에 있는 조약돌을 보니 그 다양한 모양과 색상이 물에 어려 영롱하기만 하다. 둥글기도 하고 납작하기도 하고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며, 어떤 것은 줄무늬가 있고 또 어떤 것은 알록달록하기도 하다. 조약돌들은 그 알맞은 크기만큼이나 자기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지 않고 물의 흐름에 따라, 땅의 모양에 따라 자신들에게 알맞은 자리를 찾아 간다. 조약돌은 커다란 돌처럼 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며, 울퉁불퉁 각을 세우지도 않는다. 어쩌면 아주 오랜 세월 물살에 부대끼면서 스스로 체득한 조약돌만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우리들은 탐욕이라는 고약한 열정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종종 갈등을 일으키고는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좀 더 과분한 대우를 요구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거칠고 모난 행동 또한 서슴지 않아 결국 구성원간의 다툼이 되고, 사회 전체의 갈등 요인이 되기도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조금만 더 배려하고 양보할 수 있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동무들의 등을 밀어 주기 위해 반질반질하고 예쁜 조약돌을 구했던 것은 동무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마음 놓고 등을 맡길 수 있었던 것은 동무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서로 그렇게 배려하고 믿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조약돌로 등이 벌게지도록 밀어주던 동무가 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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