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전 세계에서 4초에 1명씩, 한 시간에 900명씩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질병이 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100만명에 도달해 치매인구와 함께 사는 '치매사회'에 진입하게 되며,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2030년이 되면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단 한명도 없게 된다고 한다.

 서양 의학이 전래되기 전에 우리 옛 어른들이 '노망(老妄,늙어서 잊어 버리는 병)', 또는 '망령(妄靈,영을 잊는 병)'이라 표현하다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으면서 해방 후 일본식 표기인 치매(癡呆)라는 말로 쓰기 시작했다. 치매라는 말은 의학적 병명이 아니고 한자로 '어리석을 치(癡)'에 '어리석을 매(呆)'. 그대로 옮기면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이라는 뜻이 된다. 말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되면 차라리 '노망'이나 '망령'이 라는 말이 좀 더 격이 있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전 세계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치료연구 외에도 다양한 치매 요양시설 등을 통한 적극적인 대처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노인복지의 첨단을 가고 있는 일본도 일찍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20년 동안 치매노인을 연구하며 돌보느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며 오늘의 노인복지강국이 되었다.

그들은 우선 '치매'라는 용어부터 바꾸었다. 2004년 후생노동성에서 이 말이 차별적이라고 해서 전 국민의 공모를 통해 '인지증(認知症)'이란 용어로 변경하였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사회는 가족이 치매에 걸렸을 경우 그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치매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대가 곧 온다.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치매커밍아웃, 이것은 치매를 극복하기 위한 세계적인 트랜드다.

우리나라도 그간 '치매'라는 용어를 바꾸고자 민간에서 주도하여 수차례 시도한 적은 있지만, 정부에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시도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이참에 보건복지부나, 국립중앙치매센터에서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명칭으로 변경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한다.

  우리 옛 어른들 말씀에 '병은 자랑하랬다' 한다. 치매는 본인은 천국, 가족은 지옥이라는 말에서 가족의 고통을 읽을 수 있는데, 돌보는 가족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다고 본다. 치매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 여전히 남의 일로 여기고 관망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 특히 정부는 용어부터 바꾸는 일에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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