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김진웅 수필가] 며칠 전, 강추위도 물리치는 모처럼 따뜻하고 훈훈한 소식에 무척 기뻤다. 지난 2월 7일, 한 청년이 부산 사하경찰서를 찾아왔다. 가장 절박했던 순간에 따뜻한 손길을 건넨 경찰에게 3만 원을 갚기 위해서였다. 이 주인공은 지난해 12월 21일 절도죄로 경찰에 입건됐다.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다 노인정에서 쌀과 김치를 훔쳤고, 미안한 마음에 청소와 설거지를 해놓고 도망갔다 한다. 청년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힘겹게 살아가다 나쁜 짓을 저질렀다.

 딱한 사정을 알고 담당 형사는 조사를 마친 뒤 "밥은 먹고 다니라"며 3만 원을 건넸는데, 망설이다 돈을 받은 청년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형사는 복지공단을 통해 청년의 숙식과 일자리까지 마련해주었고, 첫 월급을 받아 갚으러 왔으니 참으로 숙연해진다. 먹구름 사이로 얼비치는 빛이 더 밝게 보이듯이…….

 이런 가슴 따뜻한 귀한 미담을 들으니, 반포지효(反哺之孝)란 말이 떠올랐다.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이라는 뜻'이고, 자식이 자라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까마귀는 알에서 깨어나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새끼가 다 자라면 그때부터는 먹이 사냥이 힘에 부치는 어미를 위해서 자식이 힘을 다하여 어미를 먹여 살린다는 유래가 있다니 참으로 뜻 깊다. 이 청년의 이야기는 비록 부모와 자식 관계는 아닐지라도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에서는 상통하는 것 같다.

 반포지효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무엇일까? '안갚음'이라는 멋진 말이 있다. '안갚음'의 '안'은 '아니'의 준말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안'은 '마음'을 뜻하니 '안갚음'은 마음을 다해 키워준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다. 국어사전(금성출판사)에도 두 가지로 나와 있었다. 첫째는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고, 둘째는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라고.

 '안갚음'은 대부분 생소하지만, '앙갚음'이란 말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보복'을 뜻하는 '앙갚음'은 은혜를 갚는 '안갚음'과 전혀 다른 말인데도. 자식이 마음을 다해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게 '안갚음'이라면, 부모가 자식의 봉양을 받는 것이 '안받음'이니 앞으로 우리말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 생활 속에서 실행에 옮겨야 된다는 것도 알았다.

 절박하고 어려운 때에 성심성의껏 돌보아준 분도 훌륭하고, 안갚음을 실천한 청년도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분열되어 실망하고 있는 차가운 가슴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국가의 중대한 시기에, 이제 국력을 탕진하는 집회는 자제하고 대선 주자들부터 "헌재에서 어떤 결정이 나도 깨끗하게 승복하고 국정 안정에 기여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는 사람이 당선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각박하고 바쁜 세상이고, 미풍양속이 잊혀가는 세태(世態)이지만, 의초롭게 지내며 '앙갚음'보다 '안갚음'하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고, 인정과 효성이 꽃피는 가정과 사회가 되는 행복한 정유년 새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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