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 종결 일시를 둘러싸고 또 다시 한국사회의 진영간 충돌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른바 헌재 발 위기다. 이번 위기는 충분히 예상돼온 것이지만,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6일 탄핵심판 14차 변론기일 말미에 2월 24일에 변론을 종결할 예정이라고 언급하면서 구체화됐다. 이 권한대행이 임기만료로 퇴임하는 3월 13일 이전에 현재의 8인 체제에서 선고하기 위해 변론종결 기일을 2월 말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수세에 몰려온 박 대통령측은 19일 “최소한의 증거조사를 하고 최종 변론을 해야 한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최종변론 기일을 3월 2일이나 3일까지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탄핵소추 무효와 기각을 외쳐온 보수우파 시민들의 모임인 태극기 집회측(대통령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과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측(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내주 말에 막바지 세대결을 위한 총 집결을 예고했다. 탄기국은 250만명, 퇴진행동은 80만명이 집회에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더 큰 우려는 탄핵심판 결과에 불복종 할 가능성이다. 탄기국은 18일 국민저항권을 발동해 ‘국민저항본부’를 발족시켰다고 밝혔다. 이처럼 충돌과 불복종 위기로 치닫고 있는 상황인데도 정치인들은 보·혁 대결에 편승해 차기 대권을 움켜쥐기 위한 선동에 정신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탄핵이 인용되거나 기각되거나 우리 사회는 치유할 수 없는 진영간의 분열과 대결이 벌어지는 건 불보듯 뻔하다.

진영간 갈등은 지난 10년 동안에 여러 차례 물리적 충돌로 발생해 이젠 상시적인 불안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번 위기 상황 초래는 물론 탄핵심판 소추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헌재에도 그 책임이 크다. 집권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 조기 대선 일정 기정사실화하고 사전선거운동  하는 것은 헌재 인용 결정을 전제로 한 것인데도 헌재는 이에 대해 한번도 지적하지 않았다. 헌재가 “나라의 혼란과 국정공백 장기화를 방치할 수없어서”라고 신속한 변론진행 이유를 설명했으나, 이는 사회 갈등을 명확하고 공정한 판결로 치유해야 하는 헌재의 역할에 비춰보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것이 헌재 본연의 의무이고, 그것만이 더 이상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이다. 누누히 지적해온 바와 같이 헌재는 정치적 판단을 하는 기구가 아니다. 정치권과 시민들이 시위대 규모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헌재의 책임이다. 노골적으로 헌재를 압박하는 장외 대결을 벌이는 것도 판결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권 주자들이 ‘벚꽃 대선’이 확정된 것처럼 공약을 발표하고 전국을 무대로 뛰는 것도 헌재의 존재를 무시하는 행태나 다름없다.

헌재는 국가 리더십의 공백을 걱정하기보다는 누구나 승복할 충분한 증거와 양심에 입각한 공정한 판단을 구하는데 전념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혼란을 예방할 수 있는 헌재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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