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이제 곧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 할거라고 한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만해도 세계 어디든 사람들의 수명은 30세를 넘지 못했다. 21세기의 막이 오르고 17년이 지난 지금 인류의 전체 평균수명은 70세에 육박하고 그중 몇몇 선진국에서는 80세를 훌쩍 넘기는 나라도 나오고 있다. 과학의 눈부신 발달이 불과 300년 만에 인간의 수명을 3배나 연장하는 기적을 가능케 했다.

이대로 간다면 진시황이 바랐던 영생불사(永生不死) 까지는 어렵더라도 머지않아 불로장생(不老長生) 이라는 인류의 오랜 염원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충분히 가져도 될 듯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꿈이 실현되려는 지금, 무조건적인 생명의 연장이 꼭 축복만은 아니라는 사실, 준비 없는 장수가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기 시작했다.
 

불교에서는 윤회전생(輪回轉生)을 되풀이하는 육도(六道)의 삶을 고해(苦海) 라고 부른다. 과연 인생이란 항구를 출발하고 대양을 항해하는 것과 같다 , 소설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19세기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의 말이다.

이처럼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예부터 사람들은 인생을 한 척의 배를 몰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항해 하는 고된 노정에 견주어왔다. 취업,결혼, 집마저도 포기하고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하는 젊은이들. 한 평생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아온 그 대가를  풍성한 결실로 거두기는커녕 고독사(孤獨死)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 우리의 인생이란 으레 힘겹게 항해를 하다 늙고 지치거나 폭풍을 만나면 피안(彼岸)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맥없이 고해 속으로 가라앉는 초라하고 가련한 돛단배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일까?

산업혁명 이전, 인류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간은 기껏해야 30년을 살다가 죽었다. 인간 세 자(世) 는 십(十) 년을 세 번 더한 30년의 인생을 뜻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니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장 귀중한 짐만을 싣고 고난이 가득한 인생 항로에 배를 띄웠다. 인간에게 제일 핵심적인 그 무엇, 고작 30년을 살면서 다른 어떤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내야만 했던 가치, 그것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생명과 혈통을 나르고 사랑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유전자 DNA는 형상화된 사랑의 별명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과거에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손에 넣었지만 그 대신 인간으로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 강한 자들이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이 부와 권력과 명예를 독식하고 약한 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의식주도 제대로 보장 못받는 N포의 삶을 강요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꿈 꿔오던 100세의 수명이 진정 우리에게 축복이 되려면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각성이 필요하다. 때를 놓치기 전 바로 지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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