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이현수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딱히 영화 매니아라고 불리기에도 머쓱하지만 나름 비상업적인 예술영화들을 탐닉하던 나로서는 지난날 열혈 청춘의 감성을 위로하던 작가주의 감독의 선두인 홍상수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았던 여든 한 살의 노장 켄 로치는 볼만한 영화를 만들 줄 아는 감독으로 꼽힌다. 다양성 영화의 접근성 한계 속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상영스크린 수를 개봉 삼 개월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늘려가는 켄 로치감독의 마스터 피스로 평가받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최근 IPTV를 통해 다시 보았다.

 항간에 최고의 영화 명대사로 평가받는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영국의 뉴캐슬에서 한평생을 목수로 일하며 살아온 다니엘 블레이크는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심장마비의 후유증으로 천직이었던 목수 일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의사로부터 안식을 권유받지만, 영국의 고용연금부에 심사차 파견 나온 비의료인 상담사는 다니엘의 노동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며 질병수당은 끝내 기각된다. 평범함의 상식 속에 아날로그 일상을 살아낸 소시민 다니엘의 분노는 제도장벽을 향한 직접행동과 이의제기로 이어지지만 끊임없는 권위와 절차에 종속된 행정 탓에 다니엘은 극도의 피로와 무기력함을 느낀다.

 전문의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질병수당을 거절당하고, 항소조차 할 수 없으며,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선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구직활동의 증빙을 제출해야 함은 물론, 인터넷으로 항소 신청을 해야 하는 비이성적인 상황들에 처한 그의 먹먹한 현실이 스크린 밖으로 서늘하게 전해 온다. 이의신청심사를 앞두고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죽어간 다니엘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항고 사유를 가족 같았던 이웃 케이티가 장례식에서 읽어가는 모습은 날선 현실 세상 이미지와 오버랩되며 공명을 불러온다.

 관료주의의 그늘인 탁상행정의 막장을 보여준 이 영화는 철옹성 같은 절차에 포획당한 복지시스템에 절망하지만 결국 그 제도에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비이성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다니엘과 케이티같은 국가의 도움이 절박한 국민들까지 제도의 그물에 걸려있다면 이는 개혁이 아닌 또 다른 규제일 뿐임을 다니엘의 죽음을 통해 항변한다. 사회 약자들을 위로하며 민영화된 복지의 비합리적인 탁상행정의 부조리함을 여지없이 꼬집으며 불편한 진실에 대한 절망감과 사람 냄새나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전달해준 이 영화는 복지는 시혜가 아닌 권리이며 이를 실행하는 국가에 대해 사람을 향한 시선을 채근한다.

 취약계층 훈련을 통해 질곡의 삶을 이겨내고자 노력하는 교육생들을 마주하는 우리 대학에서도 또 다른 한국의 다니엘은 없는지 통렬하게 자기반성을 권유하는 계몽영화라고 오마쥬 될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국민의 세금으로 나라 밥을 먹는 분들 중에 아직 이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관람을 권유 드린다. 내심 부끄럽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눈시울이 불거져도 가급적 남사스럽지 않을 혼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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