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정치판은 늘 혼란스럽다. 주고받는 말도 너무 거칠다. 욕설과 고함과 막말은 이미 의사당 안팎에서 일상화된 지 오래다. 그래서 국민들은 또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한다. 얼마 전 안철수 의원이 "짐승만도 못한 말이다"라고 격한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한 말이다. 문 전 대표가 지난 2012년 12월 18대 대통령선거 때 안 의원이 자신을 돕지 않고 외국으로 가 버렸다고 한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했을까 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정계에서 보기 드물게 지적인 인물로 꼽혀온 안 의원의 말이라고 믿기 어려운 험한 표현이었다.

 정치판에서는 비상식적이고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상스러운 막말을 해야 더 주목을 받는다. 좋던 나쁘던 뉴스에 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른바 소란(노이즈) 마케팅이다. 또 지지층을 결속시키고 대결구도를 형성함으로써 존재감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 수년간 가장 유명했던 원색 발언을 거론한다면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그 년'을 빼놓을 수 없다. 2012년 대선 전 당시 박근혜 예비 대통령 후보에게 한 표현이었다. 나중에 '그녀는'의 약자라고 해명했지만 궁색했다. 3년 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지도부 회동에 참석한 이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에게 박 대통령이 "예전에 저보고 '그 년, 이 년'이라고 하셨잖아요"라고 면전에서 항의해 다시 부각되기도 했다. 험한 말은 상대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준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정치권에선 착하고 선한 발언은 오히려 난도질 당한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선한 의지"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걸 보면 심성이 꼬여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안 지사는 19일 부산대에서 열린 '즉문즉답'이라는 대학생들과의 대화 행사에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 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는데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선한 뜻이 담긴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정치판에서 용납되지 못한다. 같은 당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왜 그렇게 선하게 봐주느냐는 것이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역사와 촛불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문재인 의원은 "안 지사의 말에 분노가 빠져있다"고 공격했다. 안 지사는 "분노는 피바람을 불러온다"고 반박해 분노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5일 만인 21일 "제 예가 적절치 못한 점은, 마음 다치고 아파하시는 분들 많다. 그런 점은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해야 했다. 이런 케이스는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상대를 상처주고 두들겨 패야만 박수를 받고, 상대를 칭찬하면 온갖 비난을 받는 세상이 무섭지 않은가? 상대방에게 온정과 덕담을 하면 큰일 나는 시대, 그 정도 관용도 허용되지 않는 사회는 너무 각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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