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온 대지가 시린 바람 속에서 가뿐 호흡으로 빗장을 풀었다. 겨우내 갇혀있던 시간들이 여린 가지 끝으로, 터질 듯 봉긋하게 솟아오른다. 북풍한설을 견딘 꽃눈들을, 시샘 하듯 차디 찬 바람이 나무 가지들을 마구 흔들어대었다. 그러나 봄은 소리도 없이 어느새 방안 깊숙이 들어 와 앉았다. 겨우내 꼭꼭 닫아 두었던 창문들을 활짝 열었다. 온 집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집안 구석구석을 수색이나 하듯 휘젓는다. 햇살 속으로 먼지들이 열을 선다. 툭툭 건드리니 아우성을 쳐댄다.

 내친김에 대청소를 했다. 집안 구석구석 잡다한 것들을 버리고 오랜 시간의 노동에 지쳐 늘어진 듯한, 옷가지들을 버리고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훌훌 털어냈다. 창밖으로 댓살 남짓 된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 하나가 통통 뛰다가 제발에 걸려 넘어졌다. 그 아이가 운다. 곁에 있던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등을 토닥여준다. 울던 아이가 까르륵 까르륵 웃더니 둘이 같이 찬 땅바닥을 뒹군다. 나도 따라 웃었다. 봄은 아가들에게서도 온다. 봄은 먼 곳에서 오는 게 아니다. 베란다 작은 화분 속에도 있었고 내 가족, 친구, 이웃에게도 있었다. 차디 찬 겨울바람 속에서 꽃눈을 키워내듯, 이렇게 봄은 또 나를 키워낸다.

 늘 세상과 소통을 해야만 세상의 속도에서 낙오되지 않을 것 같은 강박증에 눌려 언제나의 일상은 내 주위를 돌아 볼 여력조차 없는 각박한 삶이었다. 가끔은 가던 길 멈추고 옆도 뒤도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 갈 일이다. 느리게 가야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다. 봄 햇살은 포근하고 따사롭다. 봄은 사랑이다. 봄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언 땅을 헤치고 올라오는 여린 새싹들에게 힘을 얻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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