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삼일절 아침이다. 예년 같았으면 기념식에 참석하느라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다. 태극기를 걸고 나서 그래도 무언가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개봉되었을 때 영화관에 가 봐야지 했다가 그냥 넘겼던 『동주』라는 영화를 다운 받았다.

 일본 경찰이 수의를 입은 윤동주 시인을 고압적인 자세로 심문하는 광경으로 영화는 시작되었다. 그 당시 윤동주 시인의 나이는 26살 꽃 다운 청년이었지만 공포에 질린 얼굴과 얼기설기 깎아 놓은 짧은 머리는 흑백영상과 어우러져 어둡다 못해 침울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과거를 회상하고 주옥같은 시구가 한 구절 한 구절 흘러나올 때면,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그토록 아름답고 순수한 감성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경이롭기조차 했다. 일제에 나라가 침탈되고 주권 없는 식민지의 국민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광경을 보며, 내내 분노를 넘어 우울하기까지 했다. 민족적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민족의식을 품고 시를 썼다는 것이 반역죄가 되었던 그 시대, 우리의 주인공들은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다.

 영화 속에서 윤동주 시인은 "사람들 마음속의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게 될 것이고, 그런 힘이 하나하나 모여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시 『쉽게 씌어진 시』에서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몰아내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가끔은 내가 대한미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살고 있다는 것도 마음을 뿌듯하게 하지만, 우리에게 윤동주, 유관순, 안중근, 신채호 선생 같은 우국열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충북은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6명이나 배출한 애국충절의 고장이 아니던가? 만약 우리에게 나라가 어려울 때 초개와 같이 자신을 버렸던 선조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자랑스러운 선조를 두지 못한 자랑스럽지 못한 후손으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요즈음 나라 안팎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IMF때보다 경제 사정은 더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취업난에 청년들은 우울하기만 하다. 계층간, 빈부간, 이념간 갈등은 심화되고 주변 열강들의 압박은 더욱 거세기만 하다. 사회 지도층에서는 저마다 나라를 살리겠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진정 나를 버리고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에만 연연하지 않고 나라와 국민들만 생각하는 우리일 수는 없는 걸까?

 오늘 새삼 이 나라의 한 국민인 것에 무거운 책임을 느껴본다. 그리고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윤동주 시인의 시 한수를 되 뇌여 본다.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에다." (『별헤는 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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