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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가 건너가 만든 새로운 나라였다(1)이용강 한국무형문화유산도자기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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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2  17: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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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강 한국무형문화유산도자기명장] 일 년 동안 여름 한철을 제외하고는 3계절 거의가 북서풍이 부는 한반도의 특성상 동해안의 강릉, 삼척, 포항 등에서 배가 표류하면 일본의 서해안에 도착하고 부산근해에서 떠내려가면 후쿠오카 근해에 닿게 되며 제주도에서 풍랑을 만나면 류큐(오키나와)에 당도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선사시대부터 많은 한반도인이 지금의 일본으로 건너가 살게 되는데 일본 열도의 민족 구성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진다.

 첫째가 대륙이 열도와 붙어있던 고대의 이주와, 빙하기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가 살게 된 한반도 지역의 북방도래인과, 둘째로 남방지역의 해양문화를 가진 세력의 북상으로 주류가 구성됐으며 백러시아계의 아이누족이 한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인원이 도일하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 백제 때일 것이다.

 2010년12월23일 아키히토 일본국왕은 신년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과 관련해서는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속일본기'와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 자세히 적혀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 여기에서 언급한 아키히토 일본국왕의 말처럼 일본의 왕실은 백제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교서를 통해서 고백하게 된 셈이다.

 간무 천황의 어머니인 화씨부인이 백제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화씨부인의 아버지는 왜(倭)의 왕실에서 '백제조신'이라는 벼슬을 지낸 화을계로 그는 백제 무령왕(501~523년)의 직계 후손이다. 이 내용은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어 한일 사학계가 그대로 인정하는 바다.
 
 무령왕 또한 일본에서 태어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서기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기습공격을 받은 지금의 한강유역에 한성백제의 개로왕이 전사하기 전에 급히 동생 곤지를 불러 만삭이된 왕비 '해사화'를 데리고 일본으로 피신케 하여 오사카 나니와로 가는 도중 북규슈 가카라시마에서 출산하게 되는데 아명을 도군(嶋君)이라하였고 왜국에서 다시 백제로 데려와 자라게 된다.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는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이 차례로 왕위에 오르지만 왕도천도의 혼란과 귀족세력간의 알력으로 모두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불혹의 나이에 무령왕이 그 뒤를 이어 25대 백제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660년 31대 의자왕 때의 백제 멸망 시 5만 여명의 인원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유민의 수장으로 후일 38대 덴지일왕이되는 인물로 나카노오에(中大兄)가 지금의 교토근처 오미하치망(近江八幡)으로 인솔하여 정착하게 된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일본의 왕실과 귀족세력의 대다수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그들은 늘 고국을 그리워하였으며 그러한 시와 노래들은 '만엽집'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미루어 짐작컨대 그러한 유전자가 오이디푸스적 콤플렉스로 작용하여 늘 영토 침탈의 야욕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닐 런지, 그리하여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을사늑약으로 조선병탄을 감행한 것이리라 유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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