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창밖은 눈이 흩날린다. 봄의 눈이다. 거친 바람에 나무들은 활처럼 휘어져 사투를 벌인다. 그 처연함은 얼마 전 우리 가족이 겪은 일 같아 애잔함이 느껴진다. 이사준비에 가족들이 모두 들떠 있었다. 인테리어며 가구를 보러 다니느라 정신없는 날들이었다. 어지간히 마무리 되었다 싶은, 이사를 이틀 앞두고 출근 준비 중이던 남편이 사고를 당했다. 척추 3,4번이 금이 갔단다. 그대로 입원하여 하루를 보냈다. 의사의 시술 권유를 뿌리치고 퇴원하여 새집에 작은아이와 있겠단다. 의사는 특별한 처치가 필요 없다며 누워있는 다는 조건으로 퇴원을 허락했다.

그날 아이들 앞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남편을 잃게 되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이 명치를 쿡쿡 찔렀다. 돌아보면 살아 온 날의 절반을 그와 함께였다. 남남이 만나 어찌 즐거운 일만 있었을까. 아프고 시린 날 조차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허약체질로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며 남편의 애를 태웠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다행히 며칠 상간에 그의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집안도 자리를 잡아간다.

흩날리던 눈이 비가 되어 내린다. 삶은 변덕스런 날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내 의사와 관계없이 몸이 송두리째 뽑혀져 다른 화분에 옮겨지는 나무의 처지가 되기도 한다. 베란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살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비 오는 날 밖으로 내 몰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당황스럽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나를 연단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음이 먼저 순응하면 자연히 몸이 따라 온다. 스스로 양분을 얻을 줄 알고 바람에 부러지기 보다는 휘어지며 바람의 방향을 알게 된다. 이쯤되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지 싶다. 허나 세상 이치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에게 닥친 위기 앞에서는 정신이 혼미해진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더 심하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하자 오히려 곤고함을 이겨낸 우리가족은 서로 더 깊이 사랑하고 믿음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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