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날씨가 연일 널을 뛰고 있다. 신중히 살펴야 할 것이 봄 날씨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미 일이 벌어졌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어깨에 모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아 마음을 놓았던 모양이다. 무르익지 않은 봄을 너무 성급하게 받아들이고 꽃을 더 오래 볼 욕심이 불러온 불찰이다. 주인을 잘못 만난 호접란 잎이 바짝 얼어 한동안 시름 앓다 마지막 잎마저 툭 떨구었다. 생기가 다 빠져 헝겊조각처럼 부들부들한 녹갈색 잎사귀들이 화분 아래에 너부러져 있다.

 경칩이 지났는데도 밤새 눈발이 휘돌고 간 흔적을 보며, 얄궂은 날씨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한 생명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안함을 쉬 떨쳐 버릴 수는 없다. 1월 중순을 넘어 앙증맞은 호접란 분 하나를 선물 받았다. '행복이 날아온다'라는 꽃말을 지니고 팔랑팔랑 피어난 꽃잎에 마음을 주며 흐뭇했다. 작은 화분 하나에 행운을 안은 듯 설레기까지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거들떠보지 않던 다른 화분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두세 종류의 식물이 함께 심겨 있어 옹색해 보인다. 목이 마르다고 잎사귀를 늘어뜨려야 겨우 물을 얻어먹던 화초들이 요즘 신경을 써주며 들여다보니 제법 윤기가 돈다. 올해는 분갈이도 해주고 더 보살펴 집안 분위기를 살려 나가고픈 마음이 꿈틀 고개를 든다.

 아직 봄이라고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유난히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문 밖에서 기웃대던 날이었다. '가끔씩 창을 열고 바람을 쐬어 주면 꽃이 더 오래 간다'고 하던 지인의 말이 생각나서 꽃 피운 호접란 분을 볕바른 마당으로 내 놓았다. 창문 틈으로 찔끔 바람을 쐬어 주는 것보다 따뜻한 햇살이 충만할 때 흠뻑 쐬어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볕 좋을 때 잠깐 내놓았다가 들여 놓는다는 것을 그만 깜빡 잊었다.

 다음날 새벽녘 퍼뜩 화분이 생각나서 나가 보았더니 이미 잎사귀가 빳빳하다. 얼음기가 빠지면 다시 깨어날까 싶어 맘 졸이며 며칠 동안 지켜보았지만 속까지 얼었던 모양이다. 연보랏빛 꽃잎은 허옇게 질린 낯빛으로 서서히 드라이플라워가 된 채 매달려 있다. 손으로 만져보니 바사삭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린다. 설익은 봄바람에 너무 긴 시간 내 놓은 것이 화를 불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꽃을 더 오래 볼 욕심만 앞선 게다. 한겨울에 찾아든 어여쁜 호접란에 애정을 쏟는답시고 들었다 놨다 초사를 떠는 통에 애꿎은 명 하나를 단축시킨 꼴이 되었다. 평소 하던 대로나 할 걸….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라는 말이 귓전에서 뱅뱅 돈다. 생명이 다한 호접란을 들어내고 새 생명체를 다시 심어야 할 것 같아 화원으로 발걸음을 했다. 몇 가지 기초지식을 덤으로 얻는다. 식물들도 종류마다 물이며 햇빛, 양분 등 받아들이는 품이 각각 다르다는 빤한 이치를 얼마나 등한시 해 왔나 싶다. 타고난 깜냥이 다 다른 것을 내 입장에서만 보고 판단해 온 것이 어디 식물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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