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우리는 가끔 일상적인 삶에 대한 피로와 권태감에 지쳐서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먼 곳으로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다거나 하는 등의 감상에 빠져든다. 본래 삶이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뚜렷하게 구체성을 띠고 다가오기 때문에 일상의 잡다하고 복잡한 일들이 삶의 요소이며 본질이라면 굳이 그것들을 피하려 애쓰지 말고 차라리 사랑해 버리면 어떨까? 그렇게 하다보면 넓은 시야와 포용력이 생겨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며 자유로움을 훨씬 더 많이 느끼리라 생각한다.

 영국의 작가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의 대표적 장편소설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에는 매우 재미있는 우화가 하나 있다. 내용인즉, 옛날에 게으른 한 임금이 훌륭한 임금이 되기 위해서는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학자들을 시켜 도서관의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고 한 권의 분량으로 줄여서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게으른 임금은 그 한권의 책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어서 알아듣기 쉽게 짧은 말로 줄여서 가져오도록 다시 명령했다. 임금의 명령에 고심한 학자들이 뾰족한 묘책이 나오지 않자 고심 끝에 임금에게 "사람은 태어나서 자라고 병들어 죽는다"고 말했다.

 이 우화는 세상의 수많은 책 속에는 우리 인간 문제나 삶의 지침을 다루지 않은 것이 없다는 뜻으로서 태어나서 자라고 병들어 죽는 네 가지 근원적인 일을 생각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걱정하고 고심하는 일이란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일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물론 한 권 분량의 독서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어리석은 임금을 이 우화는 비유했지만, 그 짧은 철학적인 말들을 결국 학자들의 고심 속에서 나왔으므로 우리 삶의 경구인 셈이다.

 이 세상에 가슴 뛰도록 기쁘고 벅찬 일들로만 꽉 채워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하루의 마침표 뒤안길에는 해결해야 할 작은 고민들이 숨 쉬고 있다. 그런 까닭에 다음날 또 다른 고민과 갈등이 합쳐져서 우리의 일상사를 이룬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두자. 사소한 일상사가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무겁게 짓누르기도 한다. 따라서 하찮다고 느껴지는 일상사가 까닭 없이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고 무겁게 만들 때 마음을 다잡아 여유를 갖도록 노력해 보자.

 꼭 먼 곳으로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 그냥 우리가 복잡하게 삶을 꾸리는 골목길을 벗어나 잠시나마 마음의 문을 열고 이 세상에서 묻히는 것들을 되돌아보자. 그렇게 하다보면 까닭 없이 마음에 이는 풍요와 여유로 누구라도 또는 어떠한 일들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며, 마음 아픈 일들을 묻히는 것들과 함께 묻고 돌아오면 백지 같은 시간들이 보일 것이다. 그것들이 쌓이고 모여서 긴 시간의 행렬은 이루어질 것이며 그러한 일들의 연속이 진정으로 아름답게 사는 삶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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