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올봄은 유난히 이가 맞지 않는 나날이 계속된다. 세상은 막말이 춤을 추고 수위는 홍수 수준이다. 무엇을 위한 악다구니인지 초점도 흐리다. 그래서 새봄을 맞는 마음은 처연하다. 이 틈에 꽃을 보았다. 매화가 피었으니 봄이고 복수초 꽃의 군락을 보았으니 지금은 분명 봄이다. 잔설 속에는 쑥이 자라고 겨우내 기세가 등등하던 무심천 언저리의 억새와 갈대도 이제 기세가 꺾이고 있다. 일방적인 새해를 대면하고 벌써 3월 중순을 맞는다. 눈만 뜨면 가히 놀랄만한 새 소식이 전달된다. 다 듣고 보려면 하루 24시간을 소진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다행히 주요 신문 머리기사를 의지하며 세상사를 가늠하다가 한 곳에 시선이 꽂혔다.

 '서민 위한 보금자리 임대주택 물량이 쏟아진다. 공공임대 12만 가구, 행복주택 2만 가구, 뉴스테이 2만 2천 가구 등 다양하게 공급, 임대료 주변 시세보다 저렴...'  선심성 소식 같아 썩 반갑지 않았다. 미혼인 자식을 둘이나 두었으니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내 자식이 꾸릴 새 삶의 보금자리로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자립의 의미로 등을 두드려주고 격려를 해주어야 마땅하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자식을 대하는 마음이 왜소해진다.

 특정 지역의 초등학생들이 휴거라는 말을 사용한단다. 그 말의 실체를 알고 심하게 놀랐던 지난해가 떠올랐다. 종교적 용어로만 알고 있던 휴거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한글 단어 '거지'를 합성한 신조어란다. 이 말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놀릴 때 비일비재하게 들리는 말이라며 담임교사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시작은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의 부모가 무심코 주고받거나 애써 자녀에게 주지시킨 말이다. 이 무슨 자만인가. 대출을 잔뜩 껴안은 허울 좋은 대형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주민 사이에 누구의 삶이 더 낫다는 단정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필자는 이런 문제가 돌출될 때마다 1996년까지 존재하던 산아제한정책을 탓한다. 나라가 가난한 것이 자식이 많아서라고 여기던 1964년부터 시작된 정부 정책은 71년도까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80년도에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심지어 86년도에는 셋째 자녀부터는 1천여 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의료보험 혜택도 불가능했다. 그 후 7년 만에 다시 출산장려정책이 시작되었다. 불과 40년 후를 내다보지 못한 잘못된 정책의 후유증은 인구절벽이라는 절박한 문제를 낳았다.

 결혼해도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논리를 펴는 세상이 되었다. 이 논리는 하나, 혹은 둘 낳기 시대에 태어나 물질적 풍요를 누린 세대의 생각이다. 돈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은 자식 농사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자식은 사랑으로 크는 나무이며 충만한 사랑을 받고 성장한 사람은 사랑의 삶을 산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세상 이치는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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