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또 다시 봄이다. 온 대지가 꿈틀거리듯이 그리움이 꿈틀댄다. 봄은 참 요상하기도하지 꽃이 피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요동을 친다.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봄 이예요! 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고목나무 같은 위에 층에 어르신도 웃음으로 화답을 해준다. 거래처 직원과 전화통화를 할 때도, 지인들과 문자를 주고받을 때에도 나는 봄 인사를 먼저 건넨다. 경쾌한 문자 알림 소리와 함께 그들에게도 봄소식이 가고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봄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 곧 봄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목련이 꽃을 피울 것이다.

 예순의 봄이다.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자주 부끄러워진다. 내 나이를 순간순간 망각하고 살아온 시간들이 많았다. 때로는 누군가 내 나이를 불쑥 물으면 한참을 생각 하고는 한다. 나이를 셀 수 없을 만큼 시간이 빠르게도 지나갔을 것이다. 숫자에 둔하기도 하지만 숫자에 민감하지도 않아서 굳이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지내왔는지도 모르겠다. 계절로 말하자면 예순의 나이는 가을이 아닐까! 몸은 구석구석 바람이 숭숭 들어서 분명 가을을 살고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봄이다. 겨울 노지에서 추위를 잘 견뎌냈지만 속이 꽉 차지 않은 봄동 같은 예순이다. 속은 차지 않았어도 퍼들퍼들 기가 살아서 봄이 되면 제일 먼저 설친다. 굳이 맛을 내지 않아도 자체로도 맛있는 봄동이다. 혹한을 이겨내면서도 봄을 꿈꾸는 봄동 같은 예순이다.

 나이가 들어도 심심하거나 무료하지가않다. 누가 TV를 바보상자라고 했던가! 나는 TV 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그런 아줌마가 되어있다. 두툼한 노트와 필기도구를 준비하고 말 잘 듣는 학생처럼 TV 앞에 앉아서 인문학 강의를 듣는다. 학문의 신세계에 빠져들고 여고생처럼 사랑에도 빠진다.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강의를 하는 멋진 교수님에게 수시로 사랑에 빠진다. 여고시절 국어선생님을 몰래 짝사랑하며 그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국어과목 시험공부를 더 열심히 했던 생각이 났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검색하듯이 매력적인 인문학 강사 교수님의 신상도 검색하고 저술하신 저서를 모조리 사들여서 읽어댔다. 사랑에 빠지고 학문의 신세계에도 빠졌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즐거움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강의를 하는 교수님의 인품의 향기에도 빠지는 것은 덤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사랑에 빠진다. 나의 사랑은 늘 뜬구름을 잡는다. 한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내는 몇 개월 동안 나는 그 드라마 주연 배우에게 툭하면 사랑에 빠진다. 그 드라마가 끝나면 심지어는 우울해지고 허전해서 견딜 수 없어 하다가도 또 다른 드라마를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또 다른 사랑에 빠져든다. 아들이 청소년기에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가 방에 걸려있었다. 나도 그 무렵 축구선수 황선홍을 많이 좋아해서 땀에 젖은 황선수의 멋진 모습을 아들에게 부탁해서 걸어두었었다. 아들은 그런 나를 어찌 생각했을까! 혼자 썸을 타는 것 보다 쓸쓸한 일도 없지만 이보다 달콤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학문이든 일이던지 푹 빠져서 산다는 것은 행복한 카타르시스다. 분명 예순의 이봄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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