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정규호 청주대 의료경영학과 교수] 지난 10일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진행된 대통령 탄핵재판을 TV로 시청하며 여러 생각에 잠겨본다. 우선 국민 대다수가 숨죽이며 재판결과를 저마다의 기대로 받아 들였겠지만, 재판결과와는 다른 묘한 기분이 들어 적어본다. 그동안 대다수의 국민은 헌법재판소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재판이 열리는지 등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웬만한 법정다툼은 각 지역의 법원에서 진행되고 특별한 경우에만 대법원에서 종결되기 때문이다.

 재판 당일 판결이 시작되기 전 카메라로 건물 주변 이곳저곳을 비춰주는데 건물밖에 시위현장이 보이고 재판소 주변을 쳐다보다가 불현듯 이곳 재판소 터에 관한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전래되며 최초의 서양의료기관(병원)이 설립된 자리가 바로 이곳 헌법재판소 자리이다. 조선 말기 갑신정변때 개화파의 한 사람인 홍영식의 집이었던 곳이다. 당시 홍영식은 갑신정변이 3일 만에 실패로 돌아가면서 역적으로 몰려 살해 되자, 그의 아버지 홍순목(영의정을 지냄)은 가족을 모두 모이도록 하고 남의 손에 죽느니 스스로 모두 자살을 택하여 패가망신한 집이었다.

 그 후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미국에서 의료선교사로 온 알렌이 갑신정변때 자객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은 민영익(민비의 조카)을 정성껏 치료하여 살려준 덕분에 고종의 환심을 얻어 광혜원이라는 최초의 병원으로 사용하게 한 것이다. 이 병원은 1주일 후엔 이름을 제중원으로 바꿔 일반 시민들을 진료하는 등 백성들을 새로운 서양식 의술로 정성껏 진료하여 하루에 265명을 진료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열심히 의료행위를 하였는지 알 수 있다. 그 후 2년 후에는 현 을지로에 있는 외환은행자리로 장소를 옮겨 보다 넓고 쾌적한 곳에서 진료를 했지만 어쨌든 그의 땀과 정성이 결실을 맺어 오늘날의 현대식 병원으로 이어지게 한 선구자인 것이다.

 홍영식이 18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개화와 개혁을 내세웠건만 보수세력에 밀려 29세로 요절한 터 위에, 알렌이라는 미국 의료선교사가 같은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자국에서의 의사라는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이 땅의 의료 및 선교를 위해 청춘을 바친 일이 시작된 장소와 대통령을 탄핵하는 역사적인 일이 동일 장소에서 있음이 예사롭지 않다. 재판장이 마지막으로 주문을 읽어가는 판결처분을 보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렸던 알렌의 처방전을 떠올려 본다. 이번 주문 판결문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신통방통한 처방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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