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바람도 불지 않아 물결이 일지 않은 수면위로, 가느다란 줄 하나! 푸른 새벽에 빨대처럼 꽂혀있다. 보이지 않는 물속으로 미끼하나 던져놓고 고고하게 먹이를 기다리는 눈빛이 수면위로 염치없이 둥둥 떠다닌다. 침묵 같은 긴 기다림의 시간은 먹이를 가운데 두고, 서로 먼저 먹으려는 짐승의 눈빛을 닮았다. 손끝을 타고 내리는 팽팽한 긴장감이 이마에 핏줄로 곤두선다.

 은빛비늘 반짝이며 물길을 차고 다가오는 커다란 실루엣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으라차차' 고함소리에 먼데 하늘이 새벽을 걷어내고 물속으로 붉은 속살을 토해냈다. 시간의 격동 속에서 분탕질을 끝낸 거대한 결과는 25cm쯤 되는 참붕어 한 마리다. 미끼에 홀려 낚시에 걸린 한 마리의 붕어를 들여다본다. 하필이면, 그 넓은 공간에서……, 이게 다 미끼 때문이지!

 어른이 되어 폼 나게 휘날리고 싶었던 날개를 꿈꾸던 소년의 검은 눈동자는 배를 드러내고 파닥이며 누워있는 붕어의 둥근 눈과 닮았다. 더듬거리던 회한의 시간들이 수면위로 불쑥 튀어 오른다.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들을 두고 목젖으로 쓸개즙이 자꾸만 올라왔다. 통장의 잔고가 비었다는 아내의 볼멘소리가 산 그림자에 밀려 물길을 타고 마치 풍경처럼 다가온다.

 어제 밤도 다리 한번 펴지 못하고 구석에 몸을 맡긴 채, 긴 새벽을 기다려야 했다. 그럴 때면 그저 허공으로 지나가는 바람 한 점에도 마구 흔들리는 여린 나뭇가지 같다. 부지런을 떨어야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던 어머니의 억척스런 몸짓 같은 갈대들이 바람 속에서 아침 햇살을 부여잡고 꺽꺽 울어댄다. 온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하루가 고요한 수면위로 뿌옇게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그렇게 시험 같은 날 속에서 오늘도 나는 세상으로 낚싯대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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